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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메이커]추계학원 배구총감독 심 재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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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메이커]추계학원 배구총감독 심 재 호

입력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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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한배구협회는 관심이 집중됐던 88서울올림픽의 남녀 대표팀감독 선임을 이례적으로 12월31일 오후에 발표했다. 이런 중대사를 모두가 종무식을 마치고 3일 연휴에 들어가는 어수선한 시기에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단 인선에 대한 언론의 화살을 피하고 3일의 시간을 벌어 비판 여론의 김을 빼자는 술수로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만큼 명분이 약한 인선이었던 것이다. (이후 88올림픽서 한국배구는 홈코트임에도 불구, 남자 11위 여자 8위의 최악의 성적을 냈다.) 이때 가장 울분을 삼킨 사람이 '심장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심재호(沈載昊) 당시 상무팀 (국군체육부대)감독이었다.그는 사상 최약체라던 청소년 남자대표팀을 조련시켜 86아시아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올림픽 감독 선임 바로 4개월 전인 87년 8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의 기적을 이룬 용장이었다. 실적으로 따지면 그에 맞설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능력과 실적에 우선하는 것이 파벌과 인맥. 대전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줄곧 군에서만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한 40세의 젊은 감독에게 그처럼 큰 영예가 돌아올 리 만무했다. 이렇듯 파벌에 치이다 보니 "나는 하느님 밖에 백이 없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고, 경기 전날 '긴장 해소용' 고스톱을 하다가도 슬그머니 빠져나가서는 빈방에 혼자 엎드려 기도할 만큼 열렬 신도가 된 게 그이다.

이후 여자 꿈나무나 키우겠다며 속세를 떠나듯 남자배구를 등졌던 심감독. 55세의 그가 이번에 한국 여자배구를 이끌 거포를 만들어 냈다. 186㎝의 장신에 남자처럼 마구 백어택을 퍼부으며 배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중앙여고 3학년 김민지. 김민지는 지난해 한국이 4위를 한 아시아 청소년선수권대회서 베스트 6과 블로킹상을 획득했으며 이제 성인 국가대표팀에 들어가도 주공격수가 될 만큼 성장했다. 여자배구실업팀의 선발제도가 드래프트로 바뀌었으니 망정이지 예전 같이 자유경쟁이면 한바탕 재벌팀들의 돈싸움을 몰고 왔을 큰 물건이다.

그 외에도 청소년대표인 이미현(180㎝)과 전민정(180㎝) 김지현(185㎝) 김태영(176㎝)이 심감독의 작품이다. 배구계에서는 침체한 여자 배구를 살리기 위해 이들 5명을 주축으로 새로운 실업팀을 창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거의 실현단계에 있다.

심감독은 대전에서 중학에 입학한 후 가난 때문에 2년을 쉰 뒤 해군 배구선수였던 형에 이끌려 대전 중앙중 2학년으로 편입, 배구를 시작했다. 그는 곧바로 천부적 재질을 보였고 충남상고를 거쳐 조재학 정동기 김충한 이용관등과 함께 70년대 보안사 전성시대를 열었다. 키는 177㎝ 밖에 안 되지만 제자리 80∼90㎝, 러닝 120㎝에 이르는 점프력과 체공력으로 왼쪽 주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후 코치를 하면서도 31세까지 선수로 뛰고 84년 상무감독을 맡았다. 당시는 키가 188㎝ 이상이거나 아시안게임 동메달만 따도 병역이 면제돼 상무 배구팀은 단신의 무명선수 밖에 없는 실정. 그러나 이들은 누구에게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서너명이 다리경련으로 코트에 나뒹굴면서도 호화멤버의 재벌팀들을 물고 늘어져 공포의 대상이었다.

86년 청소년대표 감독이 그에게 떨어졌다. 멤버들이 대단치 않아 별로 경쟁이 없는 데다 부대 고위층에서 힘을 써준 덕이었다. 주전 선수들은 주장 서남원부터 김은석 마낙길 박삼용 어창선 이성희까지 모두 186∼190㎝의 단신. 특히 팀의 핵심인 세터 이성희가 경험이 없는 무명이라는 점은 큰 불안요소였다. 그러나 선수단은 공수부대 유격훈련으로 시작한 8, 9월 2개월의 지옥훈련 끝에 중국 일본을 물리치고 우승을 이뤘고, 다음해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는 대회직전 독일의 친선대회 3경기서 한 세트도 따보지 못한 세계최강 쿠바까지 3-2로 꺾고 우승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선수들에게 주입한 것은 투지와 기동력, 그리고 공격적 점핑 서브. 상대 장신들의 공격을 둔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강한 서브로 공격해야 한다는 심감독의 소신에 따라 선수들은 단신임에도 불구, 과감한 점핑 서브를 익혔고 이는 나중에 심재호사단 출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이후 이성희 박삼용 어창선은 고려증권의 대통령배 3연패 주역, 마낙길은 성균관대 돌풍의 핵으로 성장했다.

89년 2월, 19년 6개월 만에 군을 떠나 추계초등학교부터 60∼70년대의 명문 중앙여중·고까지 3개팀을 지도하는 추계학원 총감독으로 옮긴 심감독은 첫번째로 퇴직금을 떼어 선수단용 승합차를 구입하는 의욕을 보였고, 이에 학교측은 숙소를 수리하고 체육관을 신축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바닥을 기던 중앙여고는 당장 다음해 90년 종별대회 우승에 이어 94, 95, 96년 3년간 정상을 누렸다. 전 국가대표인 유연수 박미경 이수정과 현 국가대표 이명희(현대) 김미진 김사니(도로공사)가 당시선수.

심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전국에서 체육교사로 활동하는 충남상고 후배들을 활용해 꾸준히 장신의 초등학생들을 발굴했다. 충북 제천에서 데려 온 이명희가 첫 작품이고 김민지 역시 4학년때 제천에서 찾아내 달리기와 점프 테스트후 추계초등학교로 전학시켰다. 김지현은 포항에 180㎝ 짜리 초등학생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 데려왔다. 지금은 185㎝가 됐다. 신장은 부모와 조부모, 외가 식구까지 보고 가능성을 예측한다. 저학년때부터 운동을 해 몸이 빠른 선수들은 이미 근육이 발달해 크지 않는다. 대부분 중학교 선수로 그치고 만다. 그래서 심감독은 좀 느리고 키가 큰 학생들을 좋아한다. 서울에서는 키 큰 재목을 발굴해도 100% 부모가 거절한다. 잘 가꿔 모델을 만들지 힘든 운동은 안 시키겠다는 생각들이다. 그래서 초중고 3개팀을 합쳐도 선수가 40명밖에 안 된다. 여자배구가 예전의 인기를 되찾지 못하면 머지않아 고사할 것이라는 게 그의 걱정이다.

심감독은 군대시절처럼 혹독한 훈련과 체벌은 못하지만 대신 정신력만은 그 이상으로 강조하고 있다. 선수들은 매일 일기를 써 임형빈 이사장(대한배구협회 명예부회장)의 검사를 받는다. 임이사장은 일기에 영어단어와 한자를 병용토록 하며 틀린 철자는 일일이 정정해준다. 심감독은 이 일기장 위의 빈칸에 매일 승자존 강자존(勝者存 强者存)을 쓰게 한다. 군대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외치던 구호이다.

그동안 실업팀과 페루 대표팀에서 몇차례 감독직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앞으로도 꿈나무 발굴과 육성을 천직으로 알겠다는 게 그의 약속이다.

유석근 편집위원sky@hk.co.kr

● 프로필

-1948년 대전생

-대전중앙중, 충남상고 선수

-보안사령부 배구선수 및 코치

-상무(국군체육부대)배구감독

-남자청소년대표 감독(86아시아선수권, 87세계선수권 우승)

-전 대한배구협회 기술지도이사

-현 추계학원(추계초, 중앙여중고) 총감독

● 심감독이 키운 선수 "김민지"

김민지(사진)는 일단 186㎝로 왼쪽 공격수로는 여자배구 사상 최장신이다. 이전에 LG정유에 187㎝의 홍지연이 있었지만 포지션은 센터. 레프트는 과거 장윤희(171㎝)의 경우에서 보듯 키가 좀 작더라도 파괴력이 필수적이다. 키가 크면 타점이 높아지고 블로킹도 위력적이라 금상첨화.

김민지는 초등학교에서는 배구에 재미를 붙여가며 기본기를 익히고 중2에 올라가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는데 중3때 180㎝로 부쩍 크며 여중 1인자로 올라섰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키가 더 이상 안 크고 살이 붙으면서 강한 웨이트 훈련으로 파워를 늘리고 있다. 순간 판단력이 좋고 점프와 수비력도 갖췄다.

부모의 키가 큰 데다 표정이 똘망똘망하고 반에서 1∼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해 초등학교 4학년때 제천으로 찾아간 심감독의 눈에 단번에 들었다. 큰 선수가 되려면 머리도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선수들이 운동이 지겨워 한번씩 팀을 이탈하는 사고를 내는데 김민지는 속을 썩인 적이 없는 모범생이기도 하다.

5월의 청소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그를 지도하고 있는 김경수감독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한국 여자배구 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공격때 스텝이 안 맞아 높이를 최대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게 흠인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며 당장 성인대표팀에 가도 주전이 될 선수라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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