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해 공습을 감행했다." 미 상무부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어 무려 57.37%에 이르는 고율의 상계관세 부과를 예비 판정, 하이닉스 반도체는 당장 대미 수출 경쟁력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으며 앞으로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 할 운명에 놓였다. 게다가 만약 하이닉스 반도체가 이번 판정으로 무너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경우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의 지위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하이닉스호의 운명은
57.37%의 상계관세가 부과되면 100원짜리 반도체를 수출하기 위해 57원37전을 내야 한다. 결국 100원짜리 반도체의 미국 내 판매가격이 157원37전 이상이 되는 셈이라 가격 경쟁력에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하이닉스가 부담할 정확한 예치금 규모는 수출규모와 환율변동 등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7월말로 예정된 미 무역위원회의 최종판정 때까지 반도체를 수출할 때 대략 매달 2,300만 달러(약 290억원) 가량을 예치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지난해에만 매달 평균 1,632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최근 3년간 수조원대 적자에 허덕이던 하이닉스가 이처럼 엄청난 자금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은 결국 경영의 심각한 타격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하이닉스는 그러나 "이번 관세 결정이 회사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며 "우회 수출 방안과 판로 개척 등 다양한 대비책을 갖고 있다"고 비관적 시각을 경계했다. 현재 하이닉스 반도체의 대미 수출물량은 전체 수출에서 25%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우선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 오리건주 유진공장의 현지생산을 최대한 늘리고 중국, 동남아 등으로 수출판로를 개척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또 최종판정에서도 관세가 부과될 경우 정부를 통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이 달 중순께 약 40% 정도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산 반도체 공습의 신호탄
이번 판정이 기술력, 자금력 등을 가진 선진업체에게는 호재,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발업체에게는 악재로 작용해 IT 경기 침체 이후 불거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재편 움직임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
반도체 전문가들은 D램 1위업체 삼성전자를 비롯해 인피니온(독일), 난야테크놀러지(대만)등을 수혜기업으로 꼽았고 상계관세 제소의 주역인 마이크론을 비롯해 엘피다, 하이닉스 등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치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미 반도체 업계의 음모론. 하이닉스측은 이번 판정에 대해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 업체를 살리기 위한 한국 반도체 업체 죽이기 음모"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하이닉스를 제소한 마이크론이 9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할 만큼 미 반도체 산업은 위기에 몰려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반도체 D램 세계 시장 매출액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각각 32.5%와 12.7%를 기록했던 반도체 대국이다.
또 대미수출이 어렵게 된 하이닉스가 아시아 시장으로 물량을 돌려 반도체 시장의 공급과잉 현상이 빚어질 경우 삼성전자도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험난한 파고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 상계관세
상계관세(countervailing duty)는 수출국 정부가 부당한 보조금을 지급해 수입국의 산업에 피해를 입혔을 경우 수입국이 부과하는 특별관세. 수입품의 국내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과다수입을 막고 자국 관련 산업을 보호하려는 취지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및 상계조치에 관한 협정에 따라 부과되고 있지만, 당초 취지와는 달리 보호무역의 정책수단으로 남용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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