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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맹자가 이라크전쟁을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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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맹자가 이라크전쟁을 본다면

입력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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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의 시대, 곧 전국시대의 일이다. 연(燕)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워졌다. 이웃에 있는 강대국 제(齊)나라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즉시 연나라를 쳐서 크게 이겼다.연나라 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나라 선왕(宣王)은 맹자에게 묻는다. "연나라를 취할까요, 말까요." 선왕의 속내는 빤하다. '이렇게 쉽게 승리를 거둔 것은, 하늘이 시킨 것이나 다름없으니, 연나라를 아주 집어 삼켜 제나라 땅으로 만들고 싶다. 그러니 당신이 허락하는 말을 좀 해 달라.' 선왕은 맹자의 말을 정복의 명분으로 삼고 싶었던 것이다.

맹자의 답은 간단했다. "당신이 연나라를 집어 삼켜 백성들이 기뻐하면 취하라, 아니면 취하지 말라." 그러나 제나라 선왕은 맹자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연나라를 집어삼킨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연나라까지 집어삼켜 초강대국이 된 제나라를 좋아할 나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제후들은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선왕이 다시 맹자에게 묻는다. "제후들이 제나라를 공격하려 합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답은 역시 명쾌하다. "연나라 백성들이 제나라 군대를 환영했던 것은 자신들을 학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군대는 기대와는 달리 어른을 죽이고 아이들은 포로로 잡았으며, 종묘(宗廟)를 헐고 보물들을 약탈했다. 해방군이 아니라 약탈군이 아닌가. 또 제나라는 원래 강대국인데 연나라까지 집어삼켰으니, 다른 나라의 제후들이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이게 제후들이 연합하여 제나라를 치려고 하는 이유다. 연나라 백성들을 학정에서 해방시키고 정치를 안정시킨 뒤 깨끗이 돌아오라. 그것이 제후들의 공격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그러나 선왕은 맹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뒷날 제나라는 연나라에 철저하게 보복을 당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대량살상무기를 찾아 없애고,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여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겠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중동 석유를 지배하겠다는 욕망이 표출된 것이라 주장한다. 미국의 첨단무기에 파괴되는 이라크와 이라크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라는 2,000년 전 맹자의 말을 새삼 떠올리고, 전쟁 반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강 명 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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