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늘 그렇지만 '지구를 지켜라'(감독 장준환)는 특히 취향에 따른 관객의 반응이 크게 엇갈리는 영화다. 올해 가장 논쟁을 부르는 영화 중의 한 편이 될 것 같다. 천재의 탄생이냐, 과도한 치기(稚氣)냐를 두고 말이다.곧 외계인이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믿는 병구(신하균)는 안드로메다 왕자의 부하(라고 믿는) 유제화학 강사장(백윤식)을 납치, 온갖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자신을 쫓는 추형사(이재용)까지 죽이고 만다.
추형사가 병구를 찾아낸 것은 최근 실종된 사람이 모두 병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내면서. 병구를 고교 때 괴롭히던 친구, 군대 고참, 쟁의를 하던 여자친구를 죽인 유제화학 공장장 등은 모두 납치돼 사람 고기 아니면 밥을 통 먹지 않는 개 '지구'의 먹이가 됐다.
"강사장이 외계인과 통신하지 못하게 하는 데는 물파스가 효과적"이라며 덤벼드는 병구는 정상일까? 그를 사랑하는 일편단심 순이(황정민)는 정상일까? 강사장은 'ztg#$snk#ZX…'라는 이름을 가진 외계인일까? 카리스마와 비굴함을 양손에 카드로 들고 있는 강사장의 성격 외에도 다양한 조연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감독의 힘은 돋보인다. 엽기적 설정으로 웃음을 던지고, 강사장과 병구의 갈등으로 액션의 고삐를 죄며 갈등과 긴박감을 적절히 쥐락펴락하는 힘은 강력하다. 데뷔 감독으로서의 연출력은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하다.
그러나 '천재적' 발상의 남용은 영화를 낯설게 하는 요인이다.
강사장을 감금한 지하 작업실의 키치적 분위기, 외계인의 강한 전파를 차단한다는 병구의 특수 헬멧과 작업복 등 지나치게 낯선 느낌을 주는 소품, 때 수건으로 문지른 후 물파스를 바르는 등의 엽기적 설정은 B급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으나 대중적 흡인력을 갖기에는 어딘가 모자라다. 전반부의 낯선 설정을 견디지 못한다면, 후반부의 강력한 메시지와 반전의 매력을 놓칠 수도 있다.
이 영화가 제한된 예산으로 적은 관객을 겨냥한 B급 영화라면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지구를 지켜라'는 분명 메이저 영화사가 제작비 33억원을 들인 영화다.
물론 많은 예산은 깔끔한 컴퓨터 그래픽과 치밀한 소품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영화가 발상과 소품으로만 완성되는 게 아니라면, 천재적 발상은 노련한 전략을 통해 좀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웰메이드'(well―made) 상업영화로 태어났어야 했다.
'지구를 지켜라'에 과도한 찬사가 쏟아지는 상황을 보고 있자면 비슷한 B급 영화적 미덕을 지니며 가족 담론에 대해 훨씬 도전적 메시지를 보낸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에게는 왜 그토록 평자들이 혹독했던가 하는 의문이 되살아 난다. 제작사 프리미엄이라도 있는 것일까?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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