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궈룽(張國榮)의 자살이 홍콩은 물론 아시아 팬들을 망연자실케 하고 있다.영화배우 겸 가수 장궈룽은 1일 오후 7시 6분(한국 시간 오후 8시 6분) 홍콩 중심가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 멤버십 클럽에서 투신, 성마리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망했다. 향년 47세.
장궈룽은 이날 클럽 테라스에서 빅토리아 항구의 전경을 바라보다 웨이터에게 급히 메모지를 부탁, 유서를 작성한 뒤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언론들은 유서에 "한 명의 20대 청년을 알게 됐는데 그와 남자애인 탕탕(唐唐) 두 사람 가운데 누굴 선택해야 좋을지 몰라 너무 괴롭다. 그래서 자살해야겠다"고 쓰여졌다고 보도했다.
장궈룽의 사망은 홍콩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의 대종상 격인 금상장(金像奬)대회 집행위원회는 6일로 예정한 행사를 잠정 보류키로 결정했다. '영웅본색'에 함께 출연했던 절친한 배우 저우룬파(周潤撥)는 "몇 달 전 장궈룽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는데, 믿을 수가 없다"며 충격을 가누지 못했다. 홍콩 팬들은 장궈룽이 추락한 지점에 꽃과 사진을 들고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한국 영화 팬들의 충격도 적지 않다. 인터넷 다음 카페의 '장국영 사랑' 등 장궈룽의 팬 사이트에는 "꺼꺼(哥哥·형이란 뜻의 애칭)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 "차라리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장궈룽의 죽음이 특히 충격적인 것은 그가 금상장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 '이도공간(異度空間)'의 내용과 흡사한 방식으로 자살했기 때문. 장궈룽은 이 영화에서 빌딩 옥상에서 자살하는 정신과 의사로 출연했으며, 촬영 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영화 속 인물과 나 자신을 혼동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번에는 너무 힘들다. 비참한 느낌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패왕별희'와 '해피 투게더'에서 동성애자를 연기한 장궈룽은 2000년 아시아판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 밝혔다.
1956년 '홍콩의 직물왕'으로 불리며 윌리엄 홀덴, 알프레드 히치콕 등 유명 인사들의 옷을 만든 유명 재단사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장궈룽은 13세에 영국으로 유학, 리즈 대학에서 직물학을 전공했다. 76년 홍콩 ATV 주최 아시아 뮤직 콘테스트에서 2등상을 받으며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85년 우위선(吳宇森) 감독의 '영웅본색'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87년 '천녀유혼', 93년 '패왕별희'로 전성기를 누렸다. 국내 TV광고에도 등장한, 거울을 보면서 맘보를 추는 장면이 인상적인 '아비정전'(90년)과 동성애자의 내면적 갈등을 치밀하게 담아낸 '해피 투게더'(97년)등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두 편은 장궈룽의 연기자적 감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대표작으로 꼽힌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