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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장궈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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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장궈룽

입력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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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죽음은 고통과 근심에서 해방되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동시에, 모든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종착점이다. 죽음은 미지에의 출발점과 현세적 종착점이 닿아 있는 모순된 지점이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그렇게 상반된다. 이 모순을 수용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자살은 죽음의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 자살은 당사자 뿐 아니라 타인을 당황스럽고 고통스럽게 한다. 20세기 전반의 문화인 중 자살로 인해 슬픔을 자아냈던 지식인이 발터 벤야민이다. 철학·문학·미술·영화이론에서 심오하고 탁월한 체계를 세운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주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대인으로서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부터 그에게 고난과 불우의 시작이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유대적 신비주의에 바탕을 둔 사물인식을 떠나지 않는 가운데, 사회주의적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는 루카치와는 달리 시민주의 문학에서 배척되었던 전위적이고 국외자적인 특징을 찾아 체계화를 시도했다.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미국 체류 허가를 얻어낸 그는 파리를 거쳐 스페인으로 향하던 중 신분이 발각되어 자살하고 말았다. 1940년 9월 피레네 산맥에서 그는 지니고 다니던 다량의 아편을 복용했다.

■ 홍콩의 배우 겸 가수 장궈룽(張國榮)이 1일 호텔에서 투신자살하여 각국의 팬들이 충격 속에 슬퍼하고 있다. 영화 '영웅본색' '아비정전'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을 단숨에 매료시켰던 그는 다시 '패왕별희'로 세계 영화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80년대 국내에 '홍콩느와르' 열풍을 불어넣은 장본인 중의 한 명이다. 여성 같이 미려한 용모의 그는 섬세하고 데카당한 연기로 관객의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그의 유서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려 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 그 우울증의 한 복판에 동성연애의 갈등이 있었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지 않았으나, 결국 그 갈등이 이 연기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셈이다. 죽음은, 더구나 자살 소식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너무나 과격해서 믿어지지 않는 농담과 같다. 60여년 전 자유를 향한 마지막 숨가쁜 고비에서 좌절된 지식인의 삶과 학문이 비애를 더해 주고, 동성애적 고뇌 속에 40대로 생애를 접은 배우의 현대적 절망이 아프게 전해 온다. "발 없는 새가 있는데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죽을 때지." (영화 '아비정전' 중에서)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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