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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3> 청자상감송하인물문매병 (靑磁象嵌松下人物文梅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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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3> 청자상감송하인물문매병 (靑磁象嵌松下人物文梅甁)

입력
2003.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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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속에서 거문고 타며 노래하는 이 사람은 행복할까. 소나무 아래 앉아 솔바람 쏘이며, 학을 춤추게 하는 이 사람은 정말 흔쾌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매병이라고 불리는 고려청자에 소나무와 거문고 타는 인물, 그리고 학이 그려져 있다고 해서 청자상감송하인물문매병(靑磁象嵌松下人物文梅甁)이라는 긴 이름이 붙은 항아리는 몇 안 되는 인물 무늬 청자다. 매병이란 항아리 입구는 작고, 어깨는 넓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모양의 병인데 고려시대에는 선(旋)과 모양이 아름다운 매병을 만들어 매화주나 인삼주 같은 고급술을 담아 놓기도 하고 감상용으로 소장하는 사람들이 많아 많은 명품이 제작됐다.

그렇게 정교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러 명품 매병 가운데 만난 이 항아리의 첫 느낌은 '참 대단하다'는 감탄이 아니라 '어? 참 재미있네'였다. 오래 들여다 볼 것도 없이 얼굴 가득 웃음이 번졌고, 한참 그렇게 보는 동안 그림 속 거문고 타는 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지금 무슨 노래를 하길래 건너편 백학이랑, 소나무가 저렇게 신나게 춤을 추나요. 아무리 우리나라 소나무가 구불구불 자란다고 하지만, 저렇게 완전히 나선형으로 몸을 돌리며 춤추게 한 걸 보면 정말 연주솜씨가 대단하시네요"라고 말을 걸고 싶어졌다.

그런데 주인공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려보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벼슬을 매양 랴 옛 산(故山) 으로 돌아오니/ 골짜기(一壑) 솔바람(松風) 이 세상 티끌(塵) 다 씻어주네/송풍아 세상 기별 거든 불어 도로 보내어라." "세사(世事) 알아 쓸 데 없어 임천(林泉)에 돌아들어/ 삼척(三尺) 금(琴) 희롱하니 백학 한 쌍 뿐이로다/세상에 무한청복(無限淸福)은 이뿐인가 하노라"는 시조를 보아도 편한 옷차림으로 소나무 아래 거문고를 들고 앉은 심정이 그렇게 홀가분하지만은 않았으리라.

무릎에 놓인 거문고가 미끄러졌는데도 추슬러 안는 대신 몸을 뒤로 제친 채 목을 길게 빼고 쏟아내고 싶은 '응어리'가 있었을 터이다. 그리고 적잖은 시간이 흘러 마침내 '풀고', '씻고', '삭힌' 응어리가 마침내 흔쾌한 웃음으로 변할 무렵의 모습이 담겼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선비들은 삼국시대 이래로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현악기를 연주하며 교양을 쌓았고, 세상일에 흔들릴 때마다 솔바람, 물소리와 함께 음악으로 마음을 닦았다. 그런 전통을 그림으로 보여 주는 이 항아리는 '송풍아 세상 기별 오거든 불어 도로 보내어라'라는 주인공의 마음을 생생하게 '들려' 준다.

송 혜 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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