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에서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각하다. 대학입시는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 걱정이 크다. 어느 공학박사가 유망한 기업을 떠나서 정부기관에 이력서를 낸 적이 있었다. 과학정책 개발에 포부가 컸던 공학박사에게 기관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행시나 사시 출신이 아닌 기술직은 고위공직자가 되기 어렵다." 꿈을 포기하라는 말이었다.얼마 전 인터넷에 대덕의 한 연구기관에서 일한 외국 명문대 출신 공학박사가 쓴 글이 올라 화제였다. "같은 시기에 MBA를 하고 온 사람과 처음에는 연봉이 같았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격차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 사람은 억대 연봉을 받고 서울 요지에 사는데 나는 그 절반 정도를 받으며 자식교육을 걱정하며 산다."
오늘날 한국경제를 이만큼 발전시킨 원동력은 바로 이공계 출신들이다. 이들은 작업복 차림으로 기름을 묻혀가며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전세계 오지를 찾아 다니며 돈을 벌었다. 열악한 시설의 연구소에서 무수한 밤을 지새우며 기술입국을 이뤄낸 주인공들이다.
우리가 지금 풍족하게 먹고 입고 살아가는 모든 것에는 이들의 땀이 배어 있다.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이공계 대학에 입학한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적성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의대와 약대로 진로를 바꾸거나 사법시험을 준비한다.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이 의사, 약사와 변호사만 되려고 하면 나라의 앞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부부터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대학 진학은 인문사회와 이공계 비율이 거의 비슷하지만 어느 정권도 장·차관 임명에 출신지역만 안배했지 전공을 고심하진 않았다. 참여정부의 국무위원도 인문사회계와 이공계가 4대1로 심각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잇달아 나오는 일본에선 기초에 충실하고 전문가를 우대하는 사회분위기가 돋보인다. 중국은 이공계 출신들로 국가지도자가 충원되고 있다. 대륙의 미래를 이공계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다.
전국 국·공립대학의 총장들이 이공계 활성화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요즘 명성 있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과학도가 자주 소개된다. 사명감만으로 이뤄낸 업적들이다. 이들이 모든 것을 바친 연구인생을 허망하게 생각하도록 사회가 버려둬서는 안 된다. 국가발전의 기틀이 IT, BT, ET, NT 등 첨단분야의 기술경쟁력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첨단기술에 의한 과학전쟁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신 방 웅 충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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