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가 지난 달 21∼24일 북한을 방문, 이라크 전쟁과 대북송금사건 특검수사 등 '민족 안팎의 정세 악화'에 대한 북쪽 인사들과 언론의 반응을 정리한 글을 한국일보에 기고했다. 한 변호사는 대북지원사업 방북단의 명예단장 자격으로 북한 민화협 인사들을 만나고, 대북지원사업 현장을 둘러보았다. /편집자 주
"인천 ― 평양". 3월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아시아나 전세기 탑승구 전광판에 이런 낯선 행선지 표지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세상 참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더디게나마 남북관계가 제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믿음도 뒤따랐다.
이번 방북은 나의 첫번째 평양 방문 때와는 하늘 길도 느낌도 달랐다. 베이징 공항의 북한 고려항공 카운터 앞에서 '평양'이라는 행선지 표지를 본 설레임을 안고 북을 향해 날아가던 첫 방문 때보다는 얼마쯤 차분한 마음이었다. 우회 아닌 직항으로 가는 그만큼 역사는 전진한 셈이다.
문득 내가 변호했던 '불법' 방북인사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지배지역으로의 탈출'과 '반국가단체 지배지역으로부터의 잠입'이란 죄목으로 중벌을 받았다. 나가면 '탈출', 들어오면 '잠입'이 되는 바로 그 곳으로 이번엔 내가 직항을 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승인받은 탈출과 잠입 행로인 것이다.
대북지원사업을 위한 방북단 100백 명을 실은 아시아나 전세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한 지 꼭 한 시간 만에 북한 순안 비행장에 착륙했다. 이렇게 금방 오갈 수 있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분단 반세기의 슬픈 역사가 아직도 몸부림 치고 있으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닌가.
순안 공항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적막했다. 이착륙하는 비행기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북측에서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허혁필 부회장이 우리 일행을 마중나왔다. 방북단은 대북지원사업의 모범생격인 '굿 네이버스'(회장 이일하 목사)가 중심이 되어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는데 참여하거나 관심이 있는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북에서는 '굿 네이버스'(Good Neighbours)를 '이웃 사랑회'라고 불렀다.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연도의 풍경은 2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숙소는 대동강 한 복판에 세워진 양각도(羊角島)국제호텔. 47층의 현대식 고층 건물에다 객실 1,000개가 넘는 북한 최신 최대의 호텔이다. 이번에도 옥류관, 만경대 생가,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을 거치는 관광코스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도착한 날 저녁 민화협 초청 환영만찬에서 허혁필 부회장은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6·15공동선언에 따라 우리 민족끼리 손잡고 역사의 온갖 난관을 같이 이겨내자"는 인사말로 민족공조를 역설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인 탓인지, 북측 인사의 언동은 상당히 긴장된 일면을 보였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는 성명을 낸 데 이어, 난데없는 데프콘? 발령 뉴스까지 전해지자 분개하는 기색이 역연했다.
허 부회장은 우리들의 방북을 동족으로서 반갑게 환영하는 따뜻함을 보이면서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조성된 '심각한 정세'에는 냉엄하고 강경한 어조로 비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허 부회장은 남측의 데프콘? 관련 보도를 알려주면서 "만(灣·걸프) 전쟁이나 판문점 사건 때도 발동하지 않은 데프콘?를 선포하여 휴가 군인까지 귀대시키다니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 보도가 청와대 대변인의 실언이 빚은 해프닝이었다는 사실은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읽고서야 알았다.
북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악의 축' 낙인을 찍은 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내세우면서도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라는 관측이 나돌만큼 몰아붙이고 있으니 위협을 느낄만 했다. 노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지지한 것외에도 대북송금사건 특검수사를 수용한 것도 몹시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었다. 그런 처사는 모두 6·15남북공동선언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다.
로동신문에도 미국과 남측을 아울러 비난하는 기사와 논설이 연일 실렸다. 3월22일자 로동신문에 실린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은 "남조선 당국이 미제가 이라크 침략 전쟁을 도발하자 때를 만난 듯이 북의 도발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느니 대북경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된다느니 하고 떠들어 대면서 데프콘?와 같은 경계태세를 취한 것은 명백히 대화협력의 상대이며 동족인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참을 수 없는 적대행위다"고 격앙된 입장을 드러냈다. 이밖에도 몇 개 단체에서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잇달아 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기사는 로동신문 전체 6면 중 5면이나 6면, 그 것도 중간 아래 단에 실려 있었다. 거친 언사를 쓰면서도 5·6면 하단에 비난기사와 성명을 앉힌 것은 음미할 여지가 있었다. 특히 로동신문은 조평통 성명보다 오히려 윗자리에 '민족공조를 실현하는 것은 통일에로의 지름길'이라는 제목의 장문의 논설을 실었다. 이런 관찰대로, 북측 허혁필 부회장도 방북단 환영·고별 만찬 인사말에서 '민족 공조'를 되풀이 강조했다.
이번 방북에서는 굿 네이버스가 북한에서 벌이고 있는 지원사업의 현장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이 단체는 7년 전 대북지원사업을 시작하여 좋은 성과를 올림으로써 북측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사업 현장을 답사했다. 1조 농축산반은 삼석닭목장·중화교잡소목장·구빈리협동농장을, 2조 보건반은 정성제약과 안과병원 신축부지·평양 제2인민병원·평양 육아원을, 그리고 3조 교육반은 평양 시내 소·중학교와 인민대학습당을 각각 돌아보았다.
나는 보건반을 택하여 먼저 정성제약을 방문했다. 처음엔 남한의 한 회사가 투자하고 시설을 했으나, 그 뒤 손을 떼는 바람에 지금은 반제품만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남쪽 두 단체의 도움으로 시설을 갖추면 주사제와 알약 완제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소장인 중년여성이 설명했다. 한국라이온스연합회의 지원으로 세우게 될 안과병원의 신축 부지도 둘러보았다.
평양 제2인민병원은 규모나 시설 등이 생각 보다 매우 빈약했다. 박 아무개 병원장은 병원이 50년 된 건갬?노후한데다 배관과 난방을 비롯한 내부시설을 대폭 개수해야 된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지원을 바라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더 숨기겠냐는 심경도 엿보였다. 각종 검사실과 입원실을 둘러보면서 보건의료분야 지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평양육아원. 네 살 이하 어린이를 맡아서 기르는 곳으로 고아뿐 아니라 부모의 질병 등 딱한 사정이 있는 어린이를 합쳐 254명을 수용하고 있었다. 영아실에는 생후 3·4개월 된 떡아기들이 하나도 울지 않고 잠들어 있거나 누워있거나 놀고 있는 것이 기특하고 귀여웠다. 육아원도 건물과 시설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도 전례없이 공개한 것부터가 북한으로서는 큰 변화라는 것이 남쪽 관계자들의 말이었다.
소년학생궁전, 묘향산 국제친선전시관, 동명왕릉, 평양 지하철, 만수대 창작사, 수출상품전시장 등을 둘러 본 느낌을 모두 언급할 겨를은 없다. 다만 23일 오전 봉수교회에서 주일예배를 함께 드린 것은 여간 감격스럽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지원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더 많이 이해하도록 힘쓰고, 전략이나 계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지혜없이 남과 북이 저마다 자기 절대화를 고집한다면 민족의 화합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남과 북은 아직도 현안에 대하여 단기적으로, 성급하게, 그리고 과민하게 판단하고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모든 일에 강경론을 선(善)이자 득책(得策)으로 여기는 경향도 여전히 남아 있다.
대북 민간지원도 돕는 쪽이나 도움을 받는 쪽이 다 함께 인도주의와 동족 사랑에 바탕을 둔 아름다운 마음을 지녀야 하고, 서로를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 정치적 이해와 고려를 떠나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마주해야 내실있는 동족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은 어렵사리 많은 변화를 이뤄냈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대목도 적지 않다. 변한 것을 소중히 가꾸고 변하지 않은 것을 꾸준히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참을성 있게 노력하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새삼스레 이런 생각을 반추하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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