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승의 득도과정이 이 만큼 험난했을까. 42.195㎞. 그것은 스포츠라기보다 맨몸으로 견뎌내기에는 너무 힘겨운 고초였다. 제1회 LG화재 코리아오픈 마라톤대회가 열린 지난달 30일 오전 9시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풀코스에 도전하는 1,800여명의 철각들과 함께 나란히 출발선에 섰다. 바람도 거의 없고 다소 흐린 날씨. 마라톤하기엔 최적이었다. 월드컵공원을 출발, 한강둔치 자전거도로를 따라 성수대교를 돌아오는 코스가 도전의 장이었다.'과속말자' 초반 쾌조 컨디션
지난 3차례의 완주에서 초반 오버페이스로 번번히 고통을 겪었던 터라 '과속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앞서가려는 욕심을 다잡았다. 10㎞지점 급수대에서 가볍게 목을 축였다. 통과시간 58분. 몸 상태는 쾌조의 컨디션을 이어갔다. 강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면서 피로감을 덜어갔다. 17㎞지점에 이르자 선두주자들이 벌써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었다. 15분이 흘렀을까. 21㎞반환점이 나타났다. 1시간 58분 통과.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힘이 들지는 않았다. 숨쉬기도 불편하지 않았다.
반환점을 돌아 23㎞지점에 이르자 4시간 페이스메이커(달리기 도우미)와 7,8명의 주자들이 그제서야 19㎞지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을 뒤로 하면서 '이대로 가면 4시간이내 기록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희망이 고개를 들었다. 코스를 '즐기는'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앞에 '마의 30㎞'지점을 알리는 팻말이 나타나자 자만을 질책하기라도 하듯 온몸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양 다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35㎞를 지나자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몸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웠고 머리속에서는 주저앉으라는 신호를 계속 내보냈다.
마지막 2㎞ '악으로' 스퍼트
어느새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훌쩍 지나쳐간다. 쫓아갈 힘도 지탱할 정신도 없었다.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듯이 아득해지는 순간 39㎞지점에 다다랐다. 조건반사적으로 두 다리를 내딛었다. 시계를 보니 4시간이 막 지나고 있었다. 지친 주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연도의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지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지배했다. 그 순간 때 아닌 황홀감이 온몸을 감쌌다. 마라톤 선수들이 종종 느낀다는 한계상황에서의 쾌감 '런너스 하이(Runner's High)'가 바로 이것일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양 다리가 마비되기 직전, 골인지점 막바지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더 이상 달릴 힘이 없었다. 1㎞를 걷다 뛰다 했다. 그리고 마지막 2㎞를 남겨두고 '악으로 깡으로' 최후의 스퍼트를 걸었다. 4시간 24분 17초. 마침내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대로 잔디밭에 무너진 기자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인생마라톤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겠다'고.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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