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설렁탕 집이라면 한쪽 벽면에 커다란 그림을 한점 걸어놓고 있다. 그림 속에는 돌에 괴인 무쇠 솥과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 있다. 솥에서는 벌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군침을 돌게 한다. 설렁탕이다.요즈음 설렁탕은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 자리잡았지만 그것이 선농단(先農壇)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선농단이란 조선시대 때 임금이 직접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를 지냈다. 임금은 선농제를 올린 뒤에는 직접 밭을 갊으로써 백성들에게 농사일의 소중함을 알렸다.
임금이 주관하는 행사인 만큼 참여 인원도 많아 일시에 많은 인원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해야 했다. 그래서 지혜를 모아 만들어낸 음식이 설렁탕이다. 설렁탕은 소 뼈다귀를 고은 육수와 삶은 쇠고기, 그리고 소금만 있으면 된다. 이것들을 끓인 후 밥만 얹으면 되고 식객이 많아지면 육수를 보충하면 그만이다.
맨 처음 설렁탕을 끓였던 곳은 어디인가. 설렁탕의 원조, 선농단이 있는 곳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주택가 한가운데. 지하철 1호선 제기역에서 느티나무 거목들이 서 있는 길을 따라 북쪽으로 야트막한 고갯마루까지 가면 나타난다. '제터고개'라 부르는 이 고개 오른쪽에 선농단이 보인다. 어린이 놀이터, 철책과 측백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안에는 제단의 초석만 남아 있어 어떤 행사를 했던 장소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매년 곡우(금년은 4월 20일)를 맞아 동대문구청이 선농제향을 지내고 있으며, 제향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설렁탕을 제공하고 있다.
선농단을 오랜 세월 외롭게 지키고 있는 나무가 있으니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된 향나무. 공식 명칭은 '서울 제기동 선농단의 향나무'이다. 선농단 남서쪽 귀퉁이에 서 있다. 높이 10m, 가슴높이 직경 72㎝에 달하며 정확한 나이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선농단이 1392년 지어졌다는 역사와 관련지어볼 때 500여 년은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긴 가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처져 가지마다 받침기둥을 세웠다.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농업이 사회의 한쪽으로 밀려 난 요즈음 인간이 아닌 나무만 옛 명소를 외롭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가도 나무는 남는다. 식목일을 4월5일로 정한 것도 바로 성종이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갈던 날을 기리기 위함이다. 우리 강산을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는 나무심기는 자자손손 이어져야 할 것이다.
/임주훈 임업연구원 박사 forefir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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