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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의 국제조류]이라크 파병의 국내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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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의 국제조류]이라크 파병의 국내정치학

입력
2003.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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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문제가 첨예한 국내정치 문제로 변하고 있다. 이번 파병 문제는 그 성격상 타협의 여지가 극히 제한되어 있고, 대립한 양측의 명분과 논리 모두 팽팽하게 맞서 있으며, 그 비중 역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있다.문제는 반전을 외치는 시민단체나 파병을 결심한 노무현 대통령 모두 외교 정책을 국내 정치와 분리해서 냉정하게 파악해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시민단체들의 반전 명분에 설득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약소국 외교 정책에서는 지속적인 명분 유지가 어렵다'는 현실주의적 경험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 대통령 역시 선거 기간에 보여준 자신의 이미지나 노선과 다른 정책을 취하는 데 따를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 반전을 외치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선거 당시 그의 주요한 정치적 지지 세력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더 이상 선거 때의 지지 세력이나 정책 노선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국내 정치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게 되어 있는데다 국제정치 역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명분과 실리의 균형을 다시 잡아 나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단체의 반전 주장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논리와 현실을 감안한 체계적인 설득 노력을 벌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파병 명분은 국익우선의 원칙이었다. 이 '국익'의 핵심은 이번 파병이 추후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미국의 이라크식 강공법을 억제하거나 최소한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는데 유용하다는 것이다. 최근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미국이 우리의 파병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북핵 문제는 이라크 사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재확인해 주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주장처럼, 이번 파병이 '대량 살상무기 제거를 위해선 무력사용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우리 스스로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이라크에 대한 우리의 군사적 행동은 곧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을 지지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파병 논리의 합리화와 단기적인 대국민 설득을 위해 이번 파병(정부의 결정)과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나치게 연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예컨대 이번 파병이 미국의 대북한 군사행동을 완전히 포기시켰다고 여겨지는 일 등은 장래 새로운 문제를 잉태할 뿐이다. 따라서 이라크 사태 후의 국제정치질서 속에서 미국이 취할 대북 정책의 가능성과 그 각각에 대한 우리의 대응에 있어, 이번 파병 시 형성될 양국 유대관계가 갖게 될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또한 이라크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외교적 노력과 대미 설득과정에서 파병이 갖게 될 의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정치적으로도 대통령은 보다 광범위한 지지 세력을 형성한다는 새로운 전략과 각오로 파병 설득 노력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민사회가 그 명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일단 채택된 정책에 순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반대와 저항만을 위한 시민사회가 아니라 반대와 타협, 저항과 적응 사이의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진정한 시민사회의 길로 나아가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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