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자유 전쟁'으로 명명된 이번 전쟁이 탈 냉전시대 패권 유지를 노린 미국 신보수파의 정치적 야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은 이제는 진부한 상식이다. 미국이 전쟁을 밀어붙인 배경에는 석유이권과 군수산업을 대변하는 보수정치세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삶과 죽음의 순간을 가르는 전투의 현장에도 정치역학 관계가 반영돼 있다. 경보병과 첨단무기에 의존, 속도전을 전개하는 미군의 전술 개념은 바로'럼스펠드 정치'의 연장이다. 미국의 언론들은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21세기 미군 전력 구조의 새 틀을 짜기 위한 실험장으로 이라크 전장을 택했다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충격과 공포'의 폭격과 신속한 지상전 전개로 이라크 군이 조기에 무너졌더라면 이번 전쟁은 그가 군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의회의 예산 지원을 얻어내는 데 훌륭한 명분을 보탰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프로이센의 전략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지적대로 "항상 안개가 낀 듯한 전장"의 불확실성은 럼스펠드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 이라크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미군의 전술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필요로 했던 1991년 걸프전 당시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 한미 외무장관 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윤영관(尹永寬) 외교부 장관은 미 정부 인사들로부터 북핵 문제의 해법이 이라크와는 다를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미국 내의 정치적 상황이 바뀐다면, 그래서 워싱턴의 강경파가 이라크에 이어 북한의 영변 핵 시설을 선제공격의 타깃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느낀다면…. 제발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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