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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미국사윗감 고스톱 상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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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미국사윗감 고스톱 상견례

입력
2003.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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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월을 뽑아 들어 담요 위로 세게 던졌다. 처형될 분이 씩 웃더니만 오월을 던졌다. 매제가 될 이는 찰싹 소리를 내며 사월을 내놓았다. 갑자기 판이 뜨거워지며 가을 단풍잎들이 쏟아져 내렸다. 어두운 언덕 위로 떠오른 보름달은 한 마리의 학을 내비쳤다. 담요 위로 내려 앉은 팔월의 새.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내 차례가 되어 "고!"하자 모두들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열 두 달이 일관성 없는 순서로 어느 정도 반복된 뒤에야 나는 "스톱" 하고 소리 쳤다. "이야, 모르는데도 잘 하네" 제일 손윗처형될 분이 2,000원을 건네며 말했다. 이제 처가식구가 될 분들로부터 돈을 따니 나는 순간 행복해졌다.고스톱판이 계속 돌면서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패가 다른 계절 위로 찰싹 소리를 내며 쉼 없이 떨어졌다. 나는 그들의 부산사투리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서울에서 배운 "식사하셨습니까"와 "밥 묵었어예"는 너무나 달랐다.

희철이 엄마가 배를 깎았다. 화투놀이를 하느라 어깨를 마주하며 둘러앉은 담요가에 놓인 접시에는 작은 포크들이 우리마냥 옹기종기 걸쳐져 있었다. "묵자." 두 살배기 희철이는 제 엄마에게 달려와 배 한 조각을 집어 들고 다람쥐처럼 앙증맞게 갉아먹었다. 희철이 삼촌은 화투 한 장을 담요 위로 던져놓고 묘한 미소를 띄우며 몸을 뒤로 젖히고 앉았다. 그 때 희철이가 판이 벌어지고 있는 담요 위로 뛰어 올라 먹던 배를 내동댕이치고는 삼촌을 따라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구, 희철아! 니 뭐하노?" 제 엄마가 금세 희철이를 끌어안았다. 모두들 와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 차례가 되었다. 갑자기 모든 게 헷갈리면서 화투패가 모두 똑같아 보였다. 나도 희철이처럼 먹던 배라도 던질까 보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나는 갑자기 두 살배기 희철이가 된 기분이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나도 사랑하는 그녀를 쳐다보며 희철이를 안아준 제 엄마마냥 나를 구해주기를 바란다.

행복한 눈짓과 여기저기서 혀 차는 소리가 나는 속에 화투놀이는 이어졌다. 또 다른 달들이 쌓여 해가 바뀌어 갈 때쯤에야 그들은 "그래, 좋아" 하며 우리 사이를 승낙해 주는 듯 했다.

"고!" 나는 그녀와 유월에 결혼식을 올린다.

웨인 드 프레머리 미국인 서울대 국제지역원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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