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개그콘서트'는 버라이어티 쇼의 범람으로 설 자리가 좁아진 코미디계에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다. 넓은 공개홀에 모인 청중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극장식 스탠딩 개그로 일요일 밤 안방에 신선한 웃음을 선사하며 숱한 스타 개그맨과 유행어를 배출했다. 1월 심현섭 강성범 등 스타 플레이어들의 집단 탈퇴로 위기를 맞았지만 바통을 이은 새 얼굴들의 분투에 힘입어 개편 이후에도 평균 31.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여전히 인기 정상을 달리고 있다.그러나 벌써 긴장이 풀린 탓일까, '개그콘서트'의 요즘 행보가 불안하다. 대부분의 코너가 매주 큰 변화 없이 반복되는 말장난으로 일관해 식상할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얼굴에 바르고 침을 분수처럼 내뿜는 엽기적 행동으로 억지 웃음을 넘어 불쾌감마저 던진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봉숭아학당' 코너에는 박준형이 '전학생'으로 등장했다. 대표 코너인 '봉숭아학당'이 소재 고갈 등으로 인기가 시들해지자 '개그콘서트'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박준형을 긴급 투입한 것이다. 그러나 짙은 눈썹이 매력적인 탤런트 송승헌을 흉내 내 검은 테이프로 굵은 눈썹을 붙이고 나온 박준형이 선보인 것이라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침 튀기기가 고작이었다. 제작진은 무대 뒤편에서 밝은 조명을 쏘아 박준형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침이 사방으로 튀고 심지어 동료 연기자 임혁필의 얼굴에 쏟아지는 장면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옥동자' 정종철은 한 술 더 떴다. 몇 주 째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고추기름 꿀 춘장 따위를 덕지덕지 발라 눈살을 찌푸리게 한 그는 이번에도 딸기잼을 들고 나와 얼굴에 발라댔다. 또 다른 인기 코너인 '갈갈이 삼형제'에서도 박준형이 툭 튀어나온 앞니로 갈아놓은 무를 그릇에 담아 정종철이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가며 퍼먹도록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처럼 도를 넘는 엽기 연출이 이어지자 '개그콘서트'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시청자들의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네티즌들은 "웃음은커녕 역겹기만 하다" "저녁 먹은 게 올라올 것 같다, 비위 약한 사람들도 좀 생각해 달라" "그걸 개그라고 하나, 아이들이 따라 할까 겁난다" "한심하다 못해 불쌍한 생각이 든다"는 비난에서부터 "그러다가 시청률이 떨어져 타 방송사의 개그 프로에 인기를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팬들의 우려가 줄을 이었다.
이밖에 "내 개그는 ㅇㅇㅇ지"하며 우겨대기만 하는 이정수의 '우격다짐', "우와∼"하는 감탄사와 김다래의 아유미, 권진영의 박명수 흉내를 되풀이하는 '우비삼남매', 맨날 뒤엉켜 뒹굴기만 하는 '무림남녀' 등 상당수 코너들의 우려먹기식 진행도 "이제는 지겹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문제점은 몇 안 되는 고정 멤버만으로 주 1회 70분짜리 프로그램을 끌어가고 있는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한다는 지적이다. 개그콘서트 출신의 한 중견 개그맨은 "지금과 같은 폐쇄적 구조로는 금세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던 무명 개그맨 등에게 문호를 개방해 끊임없이 새로운 피를 수혈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석 PD는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에 뜬 비난 글들을 보고 지난주에 녹화한 6일 방송 분부터는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장면을 모두 뺐다"면서 "오래된 몇몇 코너를 없애고 새로운 소재를 적극 발굴해 선보이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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