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고 있다. 언론개혁의 당위성 및 권력과 언론의 정상적 관계를 강조하는 발언들이다. 그러나 잇단 발언의 뒤에는 권력과 언론의 현실 상황에 대한 일방적 평가가 깔려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 이상의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노 대통령의 언론관이 무엇인지를 가름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러한 부조화 때문이다. 발언이 나올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노 대통령의 언론관이 어떻게 형성됐으며 최근의 언론 관련 발언이 어떤 배경과 의도에서 나왔는지를 짚어 본다.언론관 형성의 연원
노 대통령의 언론관은 초선의원 시절 조선일보와의 악연으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노 대통령은 1991년 10월 14대 총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주간조선'이 게재한 '노 의원은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하게 된다. 이 기사는 인권 변호사로 알려진 당시 노 의원이 부동산 투기의 전력이 있고 호화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등 재산 규모 및 형성 과정의 의혹을 보도한 것이다. 이 기사가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계량할 수 없으나 결국 노 의원은 재선에 실패했다. 분노한 노 의원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1년여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부당한 언론의 횡포에 맞서 싸워 승리한 것이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이 정치를 계속하면서 견지했던 명분과 원칙 중시의 비타협적 노선도 언론관의 한 축을 이뤘을 것이라는 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개혁·진보 세력이 조선·동아·중앙 등 보수 언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들 신문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반감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표출된다. 2002년 4월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르고 있던 노 대통령은 자신이 '메이저 신문 국유화, 동아일보 폐간'발언을 했다는 일부의 폭로와 관련된 기사를 동아·조선 등이 연일 보도하자 이를 언론의 일탈행위로 규정한 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경선에서 손을 떼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노 대통령은 "과거 동아일보를 좋아했으나 요즈음 논조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또 2002년 5월 자신의 '깽판'발언이 문제가 되자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동맹관계를 뜻하는 '조―한 동맹'을 거론했다. 이전에도 '조선일보는 이회창 총재의 기관지''조폭 언론''언론과의 전쟁 불사'등 특정 신문을 겨냥한 발언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노 대통령과 노사모는 또 대선 과정에서 조선일보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다.
취임후 언론관 및 발언 배경
취임 이후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언론관이 바뀐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특정 신문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는 일 없이 개혁의 당위성을 언론 전체에 일반화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통령으로서 특정 신문을 거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인지, 아니면 제도적 개혁의 대상으로 언론 전체를 겨냥하고 있는지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방송에 대해서는 최근 '어느 정도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신문과 방송의 개혁 수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서는 17대 총선 대비 등 복합적인 정치적 목적에서 신문과 방송에 대한 대응을 달리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와 함께 29일 청와대 비서실 워크숍에서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 대통령은 '지난 DJ정부에 박해를 가했던 언론이 여전히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고 오히려 언론 환경은 더 나빠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양대 정권을 박해하고 있는 언론이 어떤 매체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또 나빠진 언론 환경의 원인이 단순히 언론의 정권에 대한 시샘과 비판 때문인지, 아니면 권력과 언론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욱 악화한 측면이 있다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노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에게 "책 잡히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자칫 권력이 언론의 횡포에 희생될 수 있다는 시각을 여전히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노 대통령이 언론에 대한 외과적 수술, 즉 제도적인 개혁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점도 의아스러운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언론사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었다. 이와 관련해선 노 대통령이 '공무원이 기자들과 소주 한 잔 먹고 헛소리를 한다'는 등의 세부적인 문제를 귀가 따갑도록 지적하는 것 자체가 언론의 입지를 축소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반복된 발언으로 언론의 입지를 최대한 약화시킨 뒤 여론의 호응을 얻어 제도적 개혁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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