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 대응책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여야가 3색의 입장과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라크전 파병과 함께 이 문제가 또 다른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다.4·3 사건 진상규명위로부터 국가 차원의 입장 표명을 건의받은 청와대는 일단 큰 테두리 안에서는 이를 수긍하면서도 대통령의 공식 조치는 유보하는 중간자적 위치를 택했다. 4·3 사건 성격과 진상을 둘러싼 보수·진보 양측의 대립과,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한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대응 방향은 노무현 대통령이 3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직접 정리했다. 정부 차원의 직접 사과 유보, 올해 4·3 사건 추모 행사의 대통령 불참 및 고건 총리 참석, 내년 4·3사건 56주기 추모식에서의 정부 입장 표명 예고 등이 구체적인 내용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직접 개입을 유보하되 총리 수준에서 정부의 성의를 표시, 보수·진보 진영과 야당, 4·3 사건 유가족단체 등을 모두 아우르려는 절충 방안인 셈이다.
또 노 대통령으로선 자치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우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4·3 진상규명위의 보고서 채택에 대해 "다른 어떤 사건보다 무거운 사안이고,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일인 만큼 사실을 재확인하고 의미를 재평가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며 이 같이 정리했다. 송경희(宋敬熙) 대변인은 "대통령 담화는 따로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어중간한 행보에 비해 여야의 대비는 한층 뚜렷했다. 민주당은 "4·3 진상규명위 보고는 국가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물꼬를 텄으며 역사를 바로 세우는 또 하나의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평수(李枰秀) 수석부대변인은 "민간인 희생자와 유족들은 지난 50여년간 자신들을 옭아맸던 이념의 굴레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4·3 보고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투철한 인식아래 균형감 있는 역사관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견제구를 날렸다. 한나라당은 당초 조해진(曺海珍) 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정부는 4·3 사건이 좌익공산집단의 무장반란임을 먼저 천명한 뒤 죄 없이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사과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4·3 사건의 좌익성을 부각시키려다 제주도 출신 의원들의 항의로 삭제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자민련 유운영(柳云永) 대변인은 "무고한 양민의 희생에 대한 정부의 보상이나 명예회복 조치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우선 4·3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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