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주부로 10년 연상인 남편은 자수성가한 사업가입니다. 소문난 잉꼬부부인 우리는 언제나 함께 여행, 사교모임, 골프를 해 왔습니다. 남편은 지난 10년 사이에 암으로 세 번 수술을 받았지만 바로 건강을 회복해 일을 했습니다. 어쩌다 갖는 부부생활 외에 나는 그를 위해 침실을 따로 해오던 차, 몇 달 전 그가 하찮은 제 나이 또래 두 여성과 동시에 깊은 관계를 여러 해 동안 맺어 왔음이 드러났습니다. 남편은 곧바로 관계를 청산했다며 이렇다 할 가책을 느끼지 않는데, 그 중 한쪽과는 아직도 의심스럽습니다. 이 가증스러운 남편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서울 도곡동 선우씨)
내조에 힘입어 사업에 성공하고, 건강도 되찾았는데도 부부의 정을 배신하는 남편이 얼마나 원망스럽습니까? 요즘은 남편의 15%가 비밀리에 애인을 갖고 혼외정사를 벌린다는 통계가 나오는데, 실은 그만큼의 아내들도 그렇다는 말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잘 먹고 잘 살게 되어 확실히 그 전보다는 이런 관계를 즐기는 층이 늘어났습니다.
남편이 지닌 바람기 가능성 외에도 암환자였다는 것이 외도를 촉진시킨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암이라는 판정과 암 치료를 받을 때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일시적으로 죽음을 생각해 절망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생(生)과 건강'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 지며, 특히 성 생활에 일대변화가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 환자는 건강한 사람을 질투하여 심술을 부리거나 골탕먹이려 들고, 만만한 가족에게 특히 그렇게 굴 때가 많습니다.
병 발견 전에 방탕했던 사람은 죄값이라는 생각에 청렴해지고 성을 멀리 하지만, 깨끗했던 사람은 반대로 변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아직 건강한 힘이 남아있다는 증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증거 확보에 기를 씁니다. 스테로이드계통의 항암제는 가끔 부작용으로 기분을 들뜨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들지요.
암환자는 겉에 보이는 상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몸 속의 암 덩어리를 더 두려워합니다. 이들은 자기 몸이 추하게 되어 가족이나 배우자에게 버림받지 않을까 지레 겁을 내며, 배우자가 먼저 살을 대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외도는 남편의 본심이 아닐 것입니다. 그릇된 방법의 자기최면이었지요. 아마 침실 각방 사용을 댁의 거절로 오해하셨을 터이니 다시 합방하시고, 남편을 용서해주시지요.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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