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20분만 되면 어김없이 TV 앞에 앉게 하는 드라마가 있다. 그 시간에 외출할 일이라도 생기면 TV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지는 드라마. MBC 일일 연속극 '인어 아가씨'(사진)가 그런 드라마다.냉정한 복수극 중심에서 홈 드라마로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드라마의 재미는 여전하다. 자신을 미워하는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아리영의 작전이 눈길을 끈다.
시할머니와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아리영의 요즘 상황도 흥미를 더한다. 철천지 원수지간인 심수정과 조수아가 자식들 때문에 사돈이 되는 과정도 재미있다. 마마 보이였던 마마준이 엄마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감행하고 있는 은예영과의 사랑도 쏠쏠한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를 꾸며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님에 감탄도 하게 된다. 완전히 다른 드라마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이야기를 잘 소화해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드라마에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보고는 있지만 드라마에 공감은 하지 않게 된다. 감동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시청자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장르가 바로 드라마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인어 아가씨'는 드라마로서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드라마가 재미는 있으나 감동이 없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에 치중한 현실감 없는 이야기 꾸밈과 '작가는 완벽하다'는 작가의 주관성이 드라마 곳곳에서 묻어 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리영의 시집은 신문사 회장 댁이다. 남편이 고위직에 있으면 아내 또한 그에 걸맞은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회장 사모님은 하는 일이 없다. 마사지를 받으러 가고 의상실에서 옷을 맞추는 일, 고급 와인을 즐기는 일이 고작이다. 시어머니와 죽이 맞아 며느리를 분가시킬 일에 골몰한다. 주책없고, 할 일 없는 여편네의 모습이다.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는 상황과 인물 설정에 공감이 생기지 않는 건 당연하다.
결혼하기 전 아리영은 팔방미인이었다. 글도 잘 쓰고, 무용도 잘 하고, 드럼도 잘 치고 거기다 예쁘기까지 했다. 결혼을 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화재로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아픈 기억은 완벽히 잊고 새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간다. 논리와 감성으로 시어머니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집안 일도 잘 한다. 청소는 물론 요리도 완벽하다.
하지만 너무 완벽한 아리영의 모습이 거부감을 준다. 극중 다른 인물은 모두 허점이 많은데 아리영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작가는 완벽하다'는 것을 아리영을 통해 그려 내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이 묻어 나는 것 같아 극중 인물에 빠져 들 수가 없다.
공감과 감동이 있을 때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고 드라마로서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분명 시청자를 TV 앞에 앉혀 놓는 재미는 있지만 공감과 감동을 주지 못하는 드라마. '인어 아가씨'가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자성해야만 하는 부분이다.
/맹숙영·방송모니터(www.goodmonitor.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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