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의 사슴을 잡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중원축록·中原逐鹿) 중국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예로부터 중국을 지배하려면 중원, 즉 지금의 시안(西安)을 제패해야 했다. 시안은 지리적으로 중국의 중심이다.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거점이며, 서부 진출의 교두보이다.옛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바로 이곳 시안이다. 따라서 중국의 서부 대개발은 실크로드의 현대적 복원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서부가 개발되면 내륙 교통로를 이용한 동서 교류가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서부 대개발 계획을 설명하는 이곳 관리들은 시안의 이 같은 지리적 장점을 맨 먼저 꼽는다. 시안을 중심에 품고 있는 샨시(陝西)성의 개발 계획이 도로 철도 공항 등 교통 인프라 확충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한 일이다. 성 정부 관계자들은 "중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앞으로 시안을 잡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자부심 섞인 전망을 내놓는다. 연해 지역에 비해 최소 10년은 뒤져 있지만 현재의 발전속도로 보면 '허세'만은 아닌 듯싶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사업'은 예나 지금이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규모이고 장기적이다. 서부 대개발의 상징적 사업인 산샤(三峽)댐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에도 각 성별로 수 많은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중국 중앙정부에서 서부 대개발 계획을 공식 발표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 이루어진 샨시성 전체의 도로 철도 공항 등 기초시설 투자액은 2,300억 위안, 한화로 무려 36조8,000억원에 이른다. 사업비 10억 위안(1,600억원) 이상의 중점 프로젝트만 102개나 된다.
샨시성은 중국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여건상 성도(省都)인 시안을 중심으로 도로가 사통팔달의 방사형을 이루고 있다. 고속도로는 동서남북 4개 축으로 9개가 건설되었거나 건설 중이다. 샨시성 개발계획위원회 류지안장(劉建江) 처장은 "시안서 베이징까지 고속도로가 완공돼 자동차로 10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다. 3년 뒤 9개 고속도로가 모두 개통되면 운송 시간이 지금의 절반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안의 경우 도시 중심을 축으로 2개의 환상 고속도로가 개설됐으며, 현재 그 외곽으로 제3 환상 고속도로가 건설 중이다. 그러나 장거리 수송에는 아직 철도와 항공편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철도와 항공은 중국 주요 도시들과 연결되며, 한국과도 직항로가 개설돼 인천까지 3시간 거리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서부 내륙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물류비용을 꼽는다. 그러나 성 정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물류여건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물류비용이 연해 지역보다 많이 드는 것은 분명하지만 값싼 인건비와 양질의 인력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기반시설 건설과 함께 시안의 남쪽 신도시 지역은 온통 건축 붐이다. 사방 어디를 돌아보아도 타워 크레인 5∼6개가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도시 전체가 공사장 같이 활기차다. 시안시에서 최고층으로 지어지는 지상 52층(189m)의 샨시성 과학기술정보센터 건물은 현대 도시로 탈바꿈하려는 이 도시의 상징물로 비친다.
시안이 중국 서북 진출의 거점이라면 쓰촨(四川)성 청뚜(成都)는 서남부의 교통과 물류 중심이다. 청뚜는 시안에 비해 도시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도시 정비도 이미 어느 정도 돼 있어 외양상 현대 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시내 간선도로는 대부분 왕복 8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고 차도 양 옆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다. 아름드리 삼나무 가로수와 길가에 꾸며진 붉고 노란 화단은 아직 바람이 차가운 3월인데도 남방의 풍취를 자아낸다.
중국은 모든 토지가 국유이기 때문에 도시계획이 세워지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도로를 넓히는 데 주민들의 반발이란 있을 수 없다. 도시개발로 밀려나는 주민들에게는 새로 조성되는 아파트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중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개발독재 시대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모뎀 생산업체인 마이푸(邁普)데이터통신의 뤄펑(羅鵬) 부총경리는 "현재 첨단기술개발단지가 조성된 이곳도 4년 전에는 모두 밭이었다"며 상전벽해의 발전상에 스스로 놀라워했다.
서부 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은 대부분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지하고 있다. 외자유치도 한 몫을 하지만 아직은 개발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쓰촨성 정부는 2010년까지 매년 8% 이상, 샨시성은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계획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투자재원 확보와 국유기업 개혁, 개방 확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아직 많다.
/시안·청뚜=김상철기자 sckim@hk.co.kr
■都農격차·관료부패 개발 "발목"
서부 개발에 대한 중국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농촌문제이다. 1980∼90년대 연해지역의 우선적 개발로 동-서 격차가 심화됐다면, 최근 서부 대개발 계획이 추진되면서 서부에서도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 최대의 농업지역인 쓰촨성의 경우 농촌인구가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지만 농업 생산액은 지난해 전체의 21%에 불과했다. 지난해 쓰촨성 주민들의 1인당 가처분 소득은 도시민이 6,640위안(한화 106만원)인데 비해 농촌주민은 2,108위안(34만원)으로 3분의 1 수준이었다. 도시간 격차도 심하다. 성도(省都)인 청뚜의 2001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4,676위안(한화 235만원)이지만 3,000위안(48만원)이 되지 않는 시(市)도 상당수이다.
제일제당 현지법인인 청뚜사료유한공사 이성복 총경리(대표)는 "개혁·개방 정책 이후 농촌 주민들의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 농촌 사람들 사이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이 태양이라면 덩샤오핑(鄧小平) 시절은 달, 장쩌민(江澤民) 시절은 별이라는 비유가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의 소득 증대는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부 대개발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료주의도 고질적인 병폐다. 정부와 당의 상류 계급은 개혁·개방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지만 오랜 사회주의 관행에 젖은 중하위 관리들은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전형적인 '철밥통'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한국 기업인은 "관청을 상대하다 보면 3무(無)를 조심하라는 말을 실감하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3무(無)란 공무원들이 민원인에 대해 처음에는 '문제없다'(無問題)고 했다가, 다음 단계에선 '괜찮다, 잘 된다'(無關係)고 하고, 나중에는 '방법이 없다, 안된다'(無方法)고 발뺌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의 부패 행각 또한 어딜 가나 공공연한 화제거리이다. 몇 년 전 쓰촨성의 한 도시에서는 시 고위 관리가 도로건설 업체로부터 도로 ㎞당 일정액을 받는 방식으로 거액의 뇌물을 챙겨 방바닥 밑에 숨겨 놓았다가 적발돼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고 현지 가이드가 귀띔했다. 중국인들은 관리의 부패와 횡포를 자신들이 처한 어쩔 수 없는 환경쯤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청뚜=김상철기자
■쉬에홍 발전계획위 부주임
쓰촨(四川)성의 경제개발 계획을 이끌고 있는 쉬에홍(解洪·사진) 성 발전계획위원회 부주임은 2010년까지 쓰촨성을 서부 최대 경제 강성(强省)으로 키워 놓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쓰촨성은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지금도 서부 12개 성·시 전체 경제의 4분의 1, 시장규모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서부의 경제 중심지입니다. 그 만큼 서부 대개발의 성공 여부는 쓰촨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러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양적 발전 못지 않게 수평적 발전, 균형 발전을 중시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기본이라는 생각이 전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개발 못지않게 생태환경의 보호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균형발전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경제 발전의 중점 추진 사항으로 기초시설의 확충과 함께 생태환경의 보호, 산업구조 개편, 수력 등 자원개발을 꼽았다.
특히 농업 비중을 줄이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비중을 높이는 산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성 전체 인구 8,600만 명 중 6,000만 명에 이르는 농촌 인구를 대폭 줄여 농촌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2차례 방문했다는 그는 농촌 개혁과 관련해 1970년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쓰촨성은 현재 21%인 농업비중을 2005년 20% 이하로 낮추고, 40.6%인 제조업 비중을 44%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청뚜=김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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