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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대한 통찰 담아야 진짜 코미디" 철학박사 탁석산씨 "웃찾사"팀에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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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대한 통찰 담아야 진짜 코미디" 철학박사 탁석산씨 "웃찾사"팀에 특강

입력
2003.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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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 철학자가 개그맨을 상대로 '코미디 특강'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웃찾사' 제작진이 초청한 강사는 '철학 읽어주는 남자' 등 대중철학서로 잘 알려진 철학박사 탁석산(47·사진)씨. 그는 "개그맨 앉혀놓고 웃기는 법 가르친다면 코미디 아닌가. 오늘은 시청자로서 말하겠다"고 운을 뗀 뒤 요즘 코미디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집어 냈다.그에 따르면 요즘 코미디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갖가지 오류를 활용한다. '미인박명'이란 말을 뱉은 뒤 옆 사람에게 '오래 살겠네'라고 면박 주는 '부정'의 오류 따위. '개그콘서트'는 시종 단어의 이중 의미를 이용한 말장난에 매달린다. "이정수의 '우격다짐'은 이런 식이다. '내 개그는 0.0001이야.' '왜?' '영(0) 아니지.' 이게 극단으로 가면 '우비삼남매'가 된다. '∼할 수밖에 없다'의 '수밖'을 '수박'으로 읽어 수박을 보여준다. 얼마나 처참한가. 절대 오래 가지 못한다."

탁씨는 성대모사 등 '개인기' 남발에도 직격탄을 퍼부었다. "5초 안에 눈길 끌지 못하면 채널 돌아간다. 맞다. 하지만 눈길 끄는 것만으로 끝나면 그건 코미디가 아니다. 스토리에 녹아들지 않은 개인기의 남발이 코미디의 위기를 불렀다. 개인기는 토크쇼에 나가서 하라"

그는 "시대에 대한 통찰이 없다면 코미디가 아니다"고 단언하면서 코미디가 다뤄야 할 이 시대의 핵심 코드로 국가권력과 시민의 대립, 빈부격차, 세대간 갈등 세가지를 꼽았다.

"인터넷에 이런 유머가 떠돌았다. 간통 사건으로 경찰에서 조사 받던 충청도 아줌마가 '전화가 왔쥬, 받았쥬, 나갔쥬, 했쥬' 하더니 경찰이 '잘못했네요'라고 다그치자 '언제부터 국가가 내꺼 관리했슈'라며 발끈했단다. 아무리 진지한 심야토론도 권력과 시민권의 갈등을 이보다 더 호소력 있게 전할 수 있겠나. 간통은 방송으로는 부적합하니 다른 소재를 찾아야 하겠지만."

그는 코미디에는 따뜻한 마음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그콘서트 '언저리 뉴스'가 왜 인기 있을까. 막판의 반전? 아니다. 반전이라면 그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 곳곳에 널려있다. 그보다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결말이 매력적이다. 웃음을 넘어 뭉클함을 준다."

탁씨는 격려의 말로 1시간의 열강을 마무리했다. "살기 힘든 때일수록 사람들은 코미디를 찾는다. 위로 받고 싶어서다. 경제도 어렵고 모든 게 혼란스러운 지금이 바로 코미디가 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여러분의 재능을 믿는다."

처음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개그맨들은 더러는 고개를 끄덕이고 박장대소하면서 특강을 경청했다. 이동규 PD는 "물론 이론과 실천은 다른 문제겠지만, 새롭고 산뜻한 웃음을 찾고자 하는 '웃찾사' 멤버들에게 오늘 강의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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