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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대통령의 우선순위

입력
2003.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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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생기를 더해가는 봄날씨와는 달리 경제는 긴 침체의 터널 속으로 들어서는 조짐이다.실물경기를 보여주는 각종 경제 지표들이 차례로 빨간불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민간소비가 50개월만에 마이너스로 반전되고 경상 수지도 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경기가 속절없이 추락하는 양상이다.

1996년 외환위기 전야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일각의 위기론은 아직 성급한 것이라 하더라도, 경제 주체 사이에 위기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암시하듯, 심리적 위기감이 현실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경기가 이처럼 침체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보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과 북핵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에 SK 회계부정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동요까지 겹치면서 사막의 모래폭풍에서처럼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불안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의 향배를 결정할 이라크전이 단기전보다 장기전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비보(悲報)가 아닐 수 없다. 경기를 지탱하는 두 기둥 가운데 내수가 무너지고 수출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으로 수출은 발이 묶이고 유가가 계속 오른다면 치명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의 장기화는 국내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동의어인 셈이다.

이렇게 경제전망이 어둡다면 이제 할 일은 비상한 각오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철저히 대비하는 것뿐이다. 막연한 기대감에 의존하거나, 경제의 체질은 여전히 양호하다는 어설픈 홍보에 매달리거나, 반개혁 세력이 위기를 조성한다는 책임회피에 급급할 때가 아니다.

사실 이라크전의 향배보다 더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 리더십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경제는 자꾸 위험스러운 국면으로 치닫는데, 집권 세력들은 과연 그 심각성을 아는 것인지,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가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는 불안이다. 국정의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경제이기를 바라는 절박한 민심과 달리,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관심사는 개혁이라는 단어 주변만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서실 전직원 워크숍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를 '한국호의 운명을 결정하는 조타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국가 조타실 전체 모임에서 대통령이 장시간 언급한 내용은 화급한 경제현안이 아니라 개혁을 위한 정신무장이요, 언론개혁의 당위성이었다. 도대체 대통령의 국정 우선 순위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노 대통령의 말처럼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을 위한 개혁은 경제를 살리는 길이지, 죽이는 길이 아니다.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글로벌이 사실상 부도를 맞았는데도 과거 한보나 대우사태와 달리 그룹 전체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김대중 정부 초기에 이뤄진 그룹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금지 조치 때문이다. 재벌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재벌개혁이 이제 위기로부터 재벌을 보호하는 안전판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무너지는 경제 위에서 개혁이 성공할 수는 없다. 경제의 안정은 개혁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개혁에 대한 관심만큼 경제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간절히 바란다.

배 정 근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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