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 파병을 놓고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곳곳에서 격렬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국회는 파병안 처리를 주저하고 있다. 파병 찬성자들도 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반대자들의 기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다.반전 시위로 몸살을 앓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세계가 반전 열기에 휩싸여 있고, 반전운동이 '반역' 취급을 받는 미국에서도 날로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금 양상이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리더십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전쟁에 찬성하는 나라나 반대하는 나라나 신념을 가지고 여론을 통합해 나가는 지도자가 있다.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물론 영국의 블레어 총리,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 독일의 슈뢰더 총리 등은 인상적인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다.
'부시의 맹목적인 추종자'라는 비난과 지지율 하락을 무릅쓰고 열성적으로 의회를 설득하는 블레어 총리의 모습은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쟁이 끝나면 그가 '21세기의 처칠'로 부상하여 부시의 지도력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파병 방침을 밝히면서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는 대신 '국익'이니 '전략적 선택'이니 하는 말을 내세웠다. 미국을 지지하는 것이 가장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에서 파병을 결정했다는 대통령의 담화는 진정 그의 생각은 무엇인지, 국익 이상의 대의는 과연 없는지 궁금케 했다.
모호한 태도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대통령의 태도는 평화주의자인 자신의 얼굴에 참전의 피를 묻히지 않으려는 것으로 비친다. 마지못해 파병 결정을 했지만 본심은 반전에 가깝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국회가 파병동의안을 처리해 주면 파병 책임을 국회와 나눌 수 있다고 믿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일 저런 일에 언급하며 불필요한 발언을 한 것도 모호함을 증폭시켰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반전 성명을 냈을 때 "그런 일 하라고 인권위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고, 노사모의 대다수가 파병에 반대하자 "일사불란의 시대는 갔다. 소속이 같다 해도 사안별로 의견을 달리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지지를 호소해도 어려운 판에 그런 사족을 달고있으니 오해 받는 게 당연하다.
전쟁이냐 평화냐 라는 선택에서 누가 전쟁을 원하겠는가. 격전이 벌어지는 이라크에 누가 우리 젊은이들을 보내고 싶겠는가. 전쟁이 장기화하리라는 전망 속에 반미감정과 반전시위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누가 파병론에 찬성하고 싶겠는가. 파병에 찬성한다는 것은 반대하는 것 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런 결정일 수 있다.
고통의 중심에 노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는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반전 편에 섰을 것이다. 또 파병에 반대하는 세력은 절대다수가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어제의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반대자들을 설득하기 보다 쉬울 것이다. "일사불란의 시대는 갔다"고 논평만 할 게 아니라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파병 찬성자들의 마음에는 반미시위로 악화한 한미관계에 대한 불안이 깔려있다. 당장 한미관계가 악화했다 해도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반미 시위의 메시지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도 물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긴박한 상황에서 한미관계에 틈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파병 지지자들의 인식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국민 설득에 나서지 않으면 파병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평화주의자고 한나라당은 전쟁주의자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통령의 모호한 처신에 그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반발은 당연하다. 파병으로 인한 국론 분열이 심각한데 국론을 통합하려는 대통령의 열의가 보이지 않는다. 파병을 선택한 이상 대통령은 중립일 수가 없다.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는 민주사회일수록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는 지도자의 능력이 중요하다. 파병 논란은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첫 시험대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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