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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50>벚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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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50>벚꽃 필 무렵

입력
2003.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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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남쪽에서부터 천천히 북으로 올라오고 있으니 서울 거리에서 그 눈부신 개화와 장렬한 낙화를 구경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면 온통 전쟁 소식이고 힘의 논리가 온 지구를 덮어 버렸지만, 때가 되었음을 알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자연의 이치는 거스를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벚나무들을 보면 왠지 마음 한 구석에서 편치 않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 거리의 벚나무들은 대부분 우리 손으로, 우리를 위해 심은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가 우리 왕조를 조롱하기 위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비하해 그 안에 동물원을 만들고 일본을 연상시키는 벚나무를 가득 심어 벚꽃놀이를 즐기게 했다는 사실이, 창경궁이 복원된 지금도 가슴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일본이 자랑하는 그 꽃나무는 여러 종류의 벚나무 중에서(우리나라에만도 산벚나무, 올벚나무 등등 십 여 가지가 산에 절로 자랍니다) 특히 꽃이 탐스러운 '왕벚나무'이며 이 나무의 자생지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의 제주도 한라산 기슭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얘기보다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도대체 벚나무는 꽃이 필 때가 됐음을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매일 달력을 보고, 일기예보를 들으면서도 따사로운 봄 볕의 유혹에 못이겨 하늘하늘 얇게 입고 집을 나섰다가 감기를 달고 들어오기가 십중팔구인데 말입니다.

식물들은 기온보다 낮과 밤의 길이로 때를 감지합니다. 살아 있는 식물과 더불어 농사를 짓거나 나무를 가꾸는 사람들이 양력보다 음력의 주기에 맞추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보통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낮이 길어짐을 느끼고 꽃의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기온은 꽃이 피는 속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 계절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여름이나 가을에 피는 꽃들은 낮시간이 보통 12시간 보다 짧아지고, 결정적으로 일정한 기간의 밤(암흑)이 인지되면 꽃을 맺기 시작합니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식물내 시스템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밝을 때 이산화탄소와 관련된 어떤 물질이 만들어지고 어두운 기간 동안 다른 물질로 변화한 후 잎에서 눈으로 전달되어 꽃을 맺도록 유도하는 물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벚나무는 그렇게 핀 꽃이 질 때가 일품입니다. 아직 신선한 연분홍 꽃잎이 하나 하나 흩날려 내려오는 모습 말입니다. 혹자는 그 모습이 일본인의 정신을 나타낸다고 말하지만, 그런 시각에 매몰돼 벚나무의 제 모습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면 그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광릉 숲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꽃잎이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 모여 앉아 낙화주를 마십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바쁜 기간을 보내고 난 후, 고단해진 몸과 마음을 꽃나무와 더불어 그렇게 위로하는 것이지요.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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