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가 맨 술만 먹어믄 시비붙고 허쟌여. 큰 일이여, 죽자 사자 일해도 살뚱 죽을뚱 헐 판인디…." 어느 마을이든 그런 이들이 한 두엇 쯤은 있기 마련. 농사가 힘들고, 농사 뒤가 힘들어 술 힘을 빌기 버릇한 탓인 지도 모른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도덕리 주민들은 혀차는 소리 끝에 으레 이 말을 붙인다. "꼭 (장수)풍뎅이 겉은 눔이여."9월께 부화해 1년 가까이 애벌레(굼벵이)로 지내다 7∼8월 성충으로 우화(羽化)하는 장수풍뎅이가 3개월 남짓 사는 동안 교미하느라 눈 뜨면 먹고 싸고 (수컷끼리)싸우는 데 빗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못난' 장수풍뎅이가 마을의 장래를 걸머지기 시작했다.
소백산맥 준령이 금산 무주로 넘기 전, 민주지산 천마산 시향산 등 옴팡진 산들을 맺었다. 그 산들이 에둘러 선 중산간 분지, 영동은 남쪽이어도 "추울때는 드럽게 춥고, 더울땐 오살지게 더운" 곳이다. 농사는 땅도 적고 자갈이 많아 "기냥 지냥(그냥 저냥) 먹을거 보돗이" 지었고, 대신 기후에 맞춰 심은 게 곶감하는 땡감과 포도 등 과실류와 표고버섯이다.
도덕리 마을은 대다수가 표고 농가다. "예전에는 여도 감 농사를 애북(제법) 지었는디, 나무들도 늙고, 심어서 20년은 돼야 수확이 되는디 다시 심굴 수도 없어서 하나 둘 표고를 시작헌거여." 윤재권(56)씨는 "그게 1968년부터니까 30년도 더 됐다"고 했다.
마을 뒷산(시향산) 수종은 '참나무 둘에 소나무 하나 꼴'로 참나무가 많다. 골짜기라 다른 동네보다는 볕도 적은 편. 참나무에 구멍파서 종균을 심어 키우는 표고농사가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70년대 중반까지 호당 농가소득이 700만원씩 됐쥬. 그려서 영동서도 '복지마을'로 꼽혔슈." 자칭 '톱쟁이(벌목공)' 박종연(40) 씨는 "당시 어른들이 버섯 한 번 (수확해) 내믄 1,000원짜리 지폐루다 돈가방 두 개를 짊어지고 왔다"고 했다. 3,4년 쓰고 난 참나무 폐목도 목욕탕 땔감이나 톱밥 퇴비용으로 팔려 나갔다.
그러던 게 언제부턴가 중국산 표고가 밀려들면서 재미가 줄었다. 윤씨는 "5,6월부터 표고를 따서 돈 나오면 애들 키우는 데 써버리고, 원목에 종균 살 때는 빚내고 허다봉게 남는 건 빚 뿐이더라"고 했다. 그는 지난 해부터 표고농사를 작파했다. 포도도 칠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당분간 계절관세를 매긴다고는 하나, 못미더웠던 터. 대신 집어 든 게, 밑천 덜 들고 손 안타는 장수풍뎅이였다.
여름 밤이면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꽃무지 등 '벌거지'들이 날아들어 방문을 못 열던 동네다. 그도 그럴 것이 곤충류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와 산란터가 썩은 참나무 아닌가. "풍뎅이 싸움 붙여 봤슈? 어찌나 사납던지 더러 뿔도 부러지고, 목도 빠질 정도유." 마을 아이들에게 장수풍뎅이는 흔해 빠진 '장난감'이었고, 예전에는 술병 얻어 간을 버린 어른들이 냄비에 볶아 먹기나 하던 천덕꾸러기였다.
마을에 풍뎅이 농사 바람을 넣은 건 박종연씨. 4년 전 가을녘이다. "한 날, 보니까 낯선 노인네 둘이서 폐목 야적장에서 굼벵이를 잡더라구유. 뭐허냐고 물었더니 그게 간에 좋디야. 한약방에 판다더라구." 그도 처음엔 '에이 그걸 누가 산디야?'했다고 했다. 그 뒤 어느 날인가 TV에서, 용인민속촌 초가지붕을 벗기는데 관광객들이 약용으로 굼벵이 잡느라 난리를 피우는 걸 보고서야 '아, 이거 돈 되겄는디'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짜기 널린 묵논(묵혀둔 논) 50평 남짓에다 참나무 톱밥 100만원 어치를 사다 40∼50㎝ 높이로 깐 뒤 굼벵이를 잡아 묻었다. 그것들이 7,8월에 성충으로 자라 산란하더니 이듬해에는 굼벵이가 만 마리도 넘게 나오더라고 했다. 그는 한약상에 마리 당 1,000원에 팔았다. 지난 해 강원대 농생물학과 연구팀도 성분시험용 2,000마리를 사갔다.
마을 7개 농가는 2001년 '장수풍뎅이 연구회(작목반)'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많게는 300∼400평, 적게는 50∼100평씩 톱밥자리를 깔고 굼벵이를 묻어두고 있다. 손 가는 일이라야 여름 밤에 풍뎅이 유혹용 전등을 켜두는 것과, 달포마다 한 번씩 청과시장에 들러 상한 수박이나 참외를 긁어 와 먹이로 얹어주는 일이 전부. 톱밥 헤쳐가며 굼벵이 '수확'하는 것도 일이지만 재미가 있어 힘든 줄도 모른다고 했다. 판로를 묻자 박진규(49)씨는 "씨 헐라고 안 팔아서 그렇지, 한약상들이 줄을 섰다"며 "지난 해 호당 500만원 못 번 집이 없을뀨"라고 말했다. 지난 해 잦은 비로 복숭아농사를 망친 손진용(55)씨가 100만원 투자한 굼벵이에서 500만원 돈을 만든 뒤 "그려도 죽으라는 법은 없네" 했다는 것 아닌가. 더러 굼벵이 농사 짓는 곳이 있지만 이 마을만큼 물량이 넉넉한 곳은 없다고 했다. 큰 돈 들이는 일이 아니어서, 복숭아 밭 등에 톱밥을 까는 이들이 늘었고, 연구회 가입을 희망하는 농가도 많아 최근에는 아예 가입 자격을 두고 있다는 귀띔. 굼벵이 농사는 버릴 것도 없다. 3∼4년 묵혀 굼벵이들이 갉아먹고 난 톱밥에는 보리쌀 크기의 까만 똥이 쌓인다. "이거 바이오퇴비 경진대회에 함 내봐유. 도나 농협 겉은 데서 한 번썩 허잖아유?" 박종연씨는 그 똥도 기가 막힌 유기질 비료라고 자랑했다.
지난 해 8월 영동군 농업기술센터는 굼벵이 농사를 농림부 '농업인 개발과제'로 제출, 연구비 1,800만원을 받아 실험을 시작했다. 온도나 습도에 따른 부화, 우화 속도나 시기 등을 연구중이다. 기술센터 조원재 연구사는 "자연상태에서 장수풍뎅이는 7∼9월에 우화하지만 환경을 갖춰주면 연중 우화가 가능하다"며 "현재 애완곤충시장에서 성충 한 쌍에 3만원씩 나간다니 그 부가가치가 엄청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시험사육 막바지 단계. 오렌지 주스에 당과 한천 등을 첨가한 성충용 먹이도 개발했다. 굼벵이 농사를 마을에 적극 보급하기 위해서는 대당 5,000만원 하는 톱밥제조기계가 필요하다는 작목반의 민원도 농업기술센터가 군이나 도를 통해 해결해줘야 할 숙제다.
지금이야 귀하니까 값이 있지, 사육농가가 늘어 가격이 떨어지면 어쩌냐고 물었다. "풍뎅이 말고도, 사슴벌레, 꽃무지 등, 딴 디선 귀하지만 마을에서는 흔한 것들만 7,8종을 정해 세트루다 전국 초등학교에 팔믄 워뗘?" "아예 곤충공원을 만드는겨. 혀서 10월 난계국악축제때 장수풍뎅이 한 2,000마리 날려봐. 함평 나비에 대겄어?" "허가내고 굼벵이 엑기스로 팔아도 될 뀨." "그려, 값이 암만 떨어져도 포도 농사보다야 안 낫겄어?" "딴 동네보다 한 걸음씩만 앞서믄 돼야." 생각들이 많았다.
/영동=글·사진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중국 중약대사전 등은 굼벵이가 간을 보하고, 허약체질 피로 월경통 구내염 치료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농업과학기술원과 원광대 전주대 등이 최근 연구한 결과, 곤충 종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굼벵이에 간세포 독성 회복 등 각종 약리효과가 입증됐다. 강원대 박규택(농생물) 교수팀 등도 2년 전부터 굼벵이의 약리성분 검사 등에 착수, 굼벵이의 성분과 약리기능 등 규명에 나섰다.
현재 굼벵이의 식품원료로서의 안전성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입장이다. 약용의 경우에도 제품화 단계에서 단 한 건도 허가 신청된 바가 없다. 하지만 한의원 등서는 오래 전부터 처방에 활용하고 있고, 제주도 일부 농가도 굼벵이 분말을 관광객에게 시판중이다. 심지어 경동시장 등 한약재료상에는 성분이 불확실한 중국산 분말까지 나와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한 연구팀 관계자는 "굼벵이나 성충을 그 상태로 판매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식(약)용으로 가공·판매하는 것은 엄밀히 따져 불법"이라며 "상황버섯도 뛰어난 약리효과가 입증돼 5,6년 전부터 유통됐지만 판매허가는 올해 초에야 나왔다"고 했다.
지역마다 지자체마다 이뤄지고 있는 이 같은 소득사업들이 제품화를 거쳐 식약청의 허가를 얻기까지는 예산이나 기술 등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은 게 현실이다.
/최윤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