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학자가 조선시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선생의 임진왜란 기록인 '징비록'(懲毖錄)을 영어로 번역하여 관심을 끌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본 역사에서는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役)'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캠페인'으로 번역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부르는 임진왜란의 '난리'(亂)라는 단어 속에는 온 가족이 남부여대(男負女戴:짐을 싸 머리에 이고 지고)하여 피난을 떠나고, 생활의 터전이 참화의 장면으로 변하는 모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다. 캠페인이라는 말에는 금융기관 직원들이 가끔 영업을 독려하기 위해 길거리에 띠를 두르고 다니면서 상품 안내서를 뿌린다든지 하는 모습 정도가 연상된다. 우리에게 전쟁은 항상 난리였다. 캠페인이나 프로젝트로서의 전쟁은 상상이 안될 수밖에 없다.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캠페인'의 결과, 주가가 상당 폭 단기간에 상승했고, 시장은 앞으로의 전황을 그대로 시황으로 반영할 기세다. 전황이 미국의 예정대로 풀리지 않고 있지만 주가는 하방 경직성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말로는 모두 전쟁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주식 시장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미사일의 폭음을 반기고 있다. 만들기는 힘들지만 부수기는 쉽다. 지난 번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에서 범인이 불과 몇 천원 어치의 기름에 불을 붙였지만 그 피해로 인명은 말할 것도 없고 복구비만으로도 516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달러 어치의 폭탄이 부술 수 있는 사회 기반 시설의 가치는 분명 그 몇 배에 달할 것이다. 더구나 이라크와 같이 원유가 많은 나라라면 복구비 정도는 부담 가능할 터이고 국제적으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전쟁의 비즈니스 측면이다.
요즘 증시에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은 간 데 없고 전황이 압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가가 550선 밑으로 쉽게는 빠지지 않는 것은 투자자들의 이러한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미국의 전쟁타깃이 이라크에 이어 북한이 된다면, 그래서 불행한 사태가 한반도에서도 벌어진다면 반대로 세계 경제에 반도체·자동차·통신장비·조선·철강·석유화학 업종의 폭발적인 호황을 가져오게 될까. 물론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낮다고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때 우리가 주식을 가지고 있건 원화 현금을 들고 있건 결국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거리가 피로 가득할 때 주식을 사라"는 다소 끔찍한 증시 격언이 생각나는 '잔인한 4월'이 한발 앞으로 다가왔다.
/제일투자증권 투신법인 리서치팀장 hunter@cjcy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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