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정보원의 위상과 역할도 많이 바뀌었지만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했다고는 볼 수 없다.지난 20여년 동안 집권한 정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권초기에 국정원의 전방위적 개혁을 강력하게 주문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정권은 오히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정원을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국정원은 국가를 위한 기구라기보다 정권을 위한 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권의 욕심과 과욕을 채우기 위해 국정원을 악용하는 사례가 반복된다면 국가최고의 정보기관은 대북정보는 물론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안보환경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까지 상실할 수 밖에 없다. 그럴 경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위기를 예방·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을 정권수호를 위한 대형 슈퍼마켓으로 착각, 활용하려 해선 안된다. 반면 정보기관의 고유 영역인 대외정보수집과 분석, 각종 대외공작과 작전, 방첩, 그리고 대방첩(Counter Counter―intelligence) 등의 부분은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가 지구상에서 유일한 냉전지대이며 이와 같은 상황을 하루 속히 해빙해야 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하지만 북한 체제가 현 상태로 유지되는 한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평화 통일이 되는 시점까지 대북정보 수집, 분석, 그리고 공작 기능을 강화해야만 한다. 동시에 우리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국제안보환경과 지역환경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으며 이에 필요한 인적자원, 정보의 교리,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전략적 제휴를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시대의 예측능력도 키워야 한다.
국정원이 직면한 문제는 크게 3개로 압축된다. 첫째, 원내에서 생산하는 정보의 상당부분은 이미 국내외 언론, 연구기관, 기업 등에서 생산·보급하고 있는 만큼 각종 공개정보를 실시간으로 보급하는 기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보의 중복현상을 과감하게 탈피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신뢰성이 있는 공개정보를 바탕으로 한 각종 시나리오 개발 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동시에 정보 최종 수요자들도 1999년 인도·파키스탄 지하 핵실험 사건이 보여주었듯이 영국의 BBC나 미국의 CNN방송이 국내외 정보기관들보다 더 빨리 정보를 보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특정사건 발생시 비정부 형태의 처리되지 않는 정보(Non-governmental raw traffic)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
둘째, 국정원의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에 대한 다양한 안이 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으나 국정원의 방첩, 대방첩, 그리고 대북공작 기능은 초당적인 합의 하에 부분적으로 복원시키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한 다각적인 침투가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 하에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 정보기관의 기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할 때 국정원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셋째, 국정원의 고유 업무에 관한 한 국가안보회의와 원내의 객관적인 판단아래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쟁력이 없는 정보보고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비정부기관들이 생산하는 각종 보고서를 적극 활용하고 필요할 경우 외주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다.
한국만큼 정보기관이 중요한 나라는 지구상에 별로 없다. 다시 말해 국가정보기능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정확한 대북 및 대외정보가 없으면 우리는 파멸의 길로 빠질 수도 있음을 항상 유념하며 국정원의 필요 기능은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 정 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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