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소련이 붕괴되고 난 후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주식시장에서는 이른바 '평화배당'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전쟁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군비축소가 가능해져 높은 성장을 통해 결국 기업 수익이 높아지고, 또 위험감소 및 예측성 증대로 주식자산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이 떨어져 주가 상승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했다.그러나 이런 기대가 있은 지 10년여 만에 이제 세계 주식시장은 정 반대의 부담을 안게 됐다.
초강대국의 무력에 의해 좌우되는 '불안한' 세계 질서는 이제 거꾸로 기업활동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또 주식자산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 전쟁으로 주식시장이 치러야 하는 대가인 셈이다.
올 들어 주식시장에 너무나 많은 장외 악재들이 집중되면서 시장에서는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역심리와, 또 반대로 '무엇이 또 남아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병존하고 있다.
전자를 먼저 생각한다면 이라크전이 단기에 그칠 경우 유가하락, 소비·투자심리 개선, 경기대책 출현기대와 같은 긍정적 요인들이 주가상승에 기여할 것이다. 또 이라크전을 계기로 북한의 태도가 완화되거나 미국의 적대적 대북 태도에 변화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선순환적인 변화들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원유 의존도가 높은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메리트를 증대시키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후자를 더 염두에 두면, 이라크전에서 파급되는 우발적인 위험요인에다, 봄이 되면서 개혁 정부의 노사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예상보다 경기가 더 나빠질 경우 수출둔화와 부동산 가격 하락 및 가계부실문제가 새로운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북핵 문제라는 고유의 국가위험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SK글로벌, 카드채 등에서 비롯된 금융시장 불안은 경제시스템의 위기로 번지지는 않겠지만 잠복된 상태로 남아있다. 시장에서 매수자에게 매력적인 금리 수준으로 거래되든지, 인수처가 확보되든지, 아니면 카드 부실에 대한 손실부담을 통해 사태가 수습돼야 한다.
전쟁이라는 불확실성이 큰 사건을 놓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기대를 부여하게 되면 투자 위험이 커진다. 우선 이라크전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제한적인 상승목표치(600포인트선 정도)를 설정하고 이후는 다른 변수의 상황전개에 따라 목표치를 조금씩 수정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김 지 환 현대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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