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께서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 하나 깊은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니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에 불과합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남명 조식(1501∼1572)의 '을묘사직소', 허권수 저 '절망의 시대 선비는 무엇을 하는가'에서.
1555년 조정에서는 산림의 처사이던 남명에게 6품인 단성 현감의 벼슬을 내린다. 그러자 남명은 사직 상소를 올리며 조정의 신하들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임금과 대비에 대해 직선적인 표현을 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대개 어린 임금은 아비 없는 고아이고 대비는 과부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여기서의 대비가 조선 역사상 최고의 '철혈 과부' 문정왕후이고 임금이 즉위 십 년째로 스무 살 된 '고아' 명종이라는 것이었다. 임금은 남명을 파면하면서 그 이유로 "내가 덕이 없는 임금인 줄 스스로 모르고서, 위대하고 어진 분에게 조막만한 고을을 다스리라고 했으니 그를 욕되게 한 것"이라고 비꼬았지만, 남명은 이미 자명한 사실을 밝힌 것만으로도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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