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에게 과연 양심은 있는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이 전쟁의 최대 원동력은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와 그 측근들의 선악 이분법적 세계관이나 천박한 국가주의라기보다는 다수 미국인들의 이 전쟁에 대한 지지라고 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질문은 우문일 것이다. 양심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 어떻게 한 나라 모든 국민의 양심 유무를 판별할 수 있겠는가. 다수 미국인들의 전쟁 지지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고 하는 고전적 명제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나, 아무래도 부가적인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약소국 콤플렉스'와 '강대국 콤플렉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해보는 건 어떨까. 먼저 우리 자신을 보자. 우리는 '최초'와 '최대'에 너무 약하다. 무슨 일에서건 뿌리를 따져서 그것이 '우리 것'이냐 아니냐에 과도할 정도로 큰 관심을 기울인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가 하면, 서양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그걸 알고 싶어하는 집착이 매우 강하다.
물론 우리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해방된 지 채 60년이 안되며, 이젠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허풍을 떨기도 하지만 아직도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그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콤플렉스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지나치지 않도록 애를 쓰되 너무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다.
약소국 콤플렉스라는 개념이 타당하다면, 강대국 콤플렉스라는 게 왜 없겠는가. 다수 미국인들이 바로 그 병에 걸려 있다. 이건 약소국 콤플렉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부시가 말하는 걸 보라. 마치 세계 대통령처럼 행세한다. 그게 어디 부시만 그런가. 다소 차이는 있을 망정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다 그랬다. 몇몇 참모들이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다.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야 하고 미국의 패권과 영광에 반대하는 자들은 악으로 매도하게끔 은연중 '미국 제일주의'라고 하는 세뇌 교육을 받아온 것이다. 다른 건 다 제쳐 놓고 할리우드 영화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것이다.
강대국 콤플렉스라는 게 별 게 아니다. 승리 중독증이다. 다수 미국인들이 전쟁 자체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사랑한다. 1983년 10월 레이건 정부가 인구 11만 명에 불과한 카리브해의 조그마한 섬나라 그라나다를 침공해 점령했을 때 레이건의 지지도가 15% 이상 급상승했다는 코미디같은 이야기는 왜 미국 대통령들이 곧잘 전쟁의 유혹에 빠지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베트남 전은 승리하기 어려운 전쟁이었다. 그래서 다수 미국인들은 나중에 그 전쟁을 반대했다. 이라크 전쟁도 장기화하면 다수 미국인들은 이 전쟁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간 이루어질 무수한 인명의 살상은 어찌 할 것인가.
강대국 콤플렉스에 걸려 전쟁을 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지 않으면 무서운 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믿는 약소국 콤플렉스부터 극복하자.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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