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4·19가 나던 해까지, 국민 전체 특히 어린이들이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1950년대 후반에 나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가난하기는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라 해도 우리집은 책 부자 집이었고 아버지가 눈 앞에 쌓아 놓는 수많은 책을 나는 부지런히 읽었다. 성인이 되고 그 많은 책들을 모두 조카에게 주어 지금 수중에 없지만 1960년 이전의 아동문학을 읽은 바로는 누구와도 겨뤄볼 자신이 있다.그 중의 하나가 이주홍의 '아름다운 고향'이다. 목록을 만들기 좋아하는 나는 이 소년소설을, 역시 이주홍의 단편 '비오는 들창'과 함께 한국 아동문학의 최고봉으로 꼽는다. 물론 내가 읽은 한도 내의 개인적인 판단에서 말이다.
정확한 연도는 모르지만 아마도 전쟁 직후에 발표된 듯한 이 작품도 당시 많은 다른 작품처럼 직접적은 아니라도 상처입은 어린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작품이다. 아동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면서도 이 소설은 어른 독자를 상대로 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농촌의 한 소년이 고인이 된 부친의 일기를 우연히 발견해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일기를 쓴 주인공 현우의 소년, 청년 시절이 내용으로 되어있다. 종의 자식으로 태어나 온갖 설움을 받으며 자라고 3·1운동 때 부친을 잃은 이 소년은 극도의 가난을 이겨내며 일본으로 유학해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다. 어린 시절 좋아하던 고향 소녀와 결혼한 후 민족운동을 계속하던 주인공은 일제에게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광복을 못 본 채 일찍 세상을 떠난다.
개인의 설움이 민족의 설움으로 연결되는 이 슬픈 내용은 격렬하지 않고 잔잔하게 (주인공이 혁명운동가가 아니라 음악가라는 설정처럼) 나의 가슴을 울렸고 나의 윗 세대의 불행했던 시절을 알도록 해 주었다. 특히 구호물자를 받으며 아마도 세계 최극빈자의 나라였던 조국에 혐오감을 가질 뻔하던 시절, 아름답게 표현된 농촌의 이미지는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또 읽었고 "어머니, 추워요"가 교과서 표기와 달리 "어머니, 치워요"로 되어있는 데 의문을 품었던 것까지 기억하고 있다. 초판본을 가지고 있었는데 잃어버렸다. 60년대 을유문화사에서 호화본으로 나온 책은 조카에게 주었고 그 후 창비아동문고의 하나로 사서 다시 읽었다. 창비문고본은 책의 체제가 조촐한 것은 마음에 드나 삽화가 그저 그런 것이 흠이다. 힌트 한 가지. 이런 작품을 TV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좋을텐데.
조 성 진 오페라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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