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고리는 신라시대 남녀의 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물이다. 조선 중기 윤국형의 수필집 '문소만록'에는 "나라의 풍속에 남녀가 어릴 때 귀밑에 구멍을 뚫고 귀고리를 드리우는 습속이 전래되었으되 아직 이를 고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조선 선조 때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출발이라며 "젊은 사내가 귀를 뚫고 귀고리하는 풍조를 금한다"는 법령을 만들었다. 남자가 귀를 뚫어 귀고리를 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에겐 낯선 경험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래서 '선비와 피어싱'(동아시아 발행, 1만5,000원)의 저자 조희진(28)씨에게는 피어싱(piercing)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회의 편견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진다. "모를 일이 아닌가. 내 몇 대조 조상 중 어느 할아버지께서 금으로 만든 귀고리를 달고 자랑스럽게 광화문 앞을 활보하셨을지도."
'선비와 피어싱'은 우리 조상들의 옷을 통해 살펴 본 사회와 문화 이야기다. 조선시대에 남자들은 귀를 뚫어 귀고리를 하고 다녔으며, 여자들은 가슴이 언뜻언뜻 보이는 짧은 저고리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젖을 먹을 아이가 탈이 나지 않도록 가슴을 열고 다녔던 선인들의 슬기로움이 담긴 게 짧은 저고리"라고 조씨는 밝힌다. 개짐(생리대)은 은밀한 것이었지만 가뭄이 들거나 전염병이 도는 등 위급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부적처럼 사용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듯 옷은 우리 문화와 생활과 정신의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많은 의류학과 학생들처럼 조희진씨도 의상 디자이너를 꿈꿨다. 그러나 그는 곧 장래 계획을 바꿔야 했다. "그림 그리는 데 소질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옷을 직접 만드는 건 좋아했지만 구상한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게 어려웠어요. 한참 고민했는데 학과 과정 중 복식사를 배우다 보니 흥미가 생겼어요."
옷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조씨는 옷이 생활과 문화를 읽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복식사'에서 나아가 '복식문화'를 공부하고 싶었다. 전공을 바꿔 민속학과 대학원을 지원했고, 졸업한 뒤 박물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01년 1월에 박물관 일을 잠시 쉬면서 최명희의 '혼불'을 읽었어요. 내용이 복잡한 역사 소설이어서 색인 작업을 해봤지요. 자료를 정리하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복식 자료를 한번 자료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도서관에서 자료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안동에서 자란 그는 경상도 할머니들을 주로 찾아 다니면서 옷을 만들고 입고 손질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이렇게 정리한 옷 얘기에 '알수록 재미있는 복식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아 인터넷에 연재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20대 젊은이의 눈으로 바라본 조상들의 복식 문화 이야기는 맛깔스러웠다. 독자들이 늘어났다. 책으로 묶기로 했지만 지난해 화제가 된 '파평 윤씨 모자 미라' 발굴작업에 참가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조씨는 의복의 역사에서 사회적 의미를 찾아낸다. 빨래하는 단순한 행위에서 재생산의 고리를 찾아낸다. 음식을 얻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잿물로 빨래를 한다. 말린 옷에 쌀가루로 풀을 쑤어 먹이고, 밤새 방망이로 두들겨 맞춘다. 먹거리는 빨래에 이렇게 반복해서 스민다.
글쓰기에 비약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신이 나서 쓰다 보니 탄탄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요. 더욱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글을 써서 독자들과 공감하고 싶어요."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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