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대병원 영안실 5층 5호실. 여느 영안실과는 달리 이 곳에는 유난히 앳된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흰 국화꽃 사이에 둘러싸인 영정의 주인공은 26일 경기 안양 자택에서 숨진 김영호(41)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김 교수의 제자들은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연구실에서 함께 날밤을 새우던 스승을 추모하며 흐느꼈다.심근경색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김 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과 81학번으로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뒤 1995년 모교에 부임했다. 기업정보시스템기술이라는 요즘 촉망받는 학문을 전공한 김 교수는 이미 국제학술지에 25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등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 신진학자로 인정받았다. 산업공학과 오형식 교수는"이 분야의 선구자라 할 김 교수의 죽음으로 우리학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의 슬픔은 단순히 스승 또는 동료 한 명에 대한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김 교수는 학문적 업적말고도 보기 드물게 성실한 연구자였기 때문.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까지 아침 8시 이전에 출근,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곤 했던 그에게 학생들은 '연구벌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한 대학원생은 "교수님은 연구와 학생 지도 밖에 모르는 진짜 학자였다"며 "프로젝트비가 나오거나 해외 출장 기회가 주어져도 모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고 전날로 추정되는 24일 저녁 회의를 마친 뒤 귀가해 밤 늦게까지 제자와 인터넷 메신저로 연구 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25일 오전에도 동료 교수에게 국제학회 참석을 권유하는 이메일을 남겼다. 자택 탁자 위에는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려고 사 둔 수학 참고서가 놓여 있었다.
한 동료 교수는 "아무리 재인박명이라지만 너무나 안타깝다"며 "묵묵히 연구하고 제자를 길러내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공대 교수들이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고 있다"고 쓸쓸하게 말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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