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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세계]서울아산병원 박 인 숙 소아심장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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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세계]서울아산병원 박 인 숙 소아심장과교수

입력
2003.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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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30여년 만에 얻은 인생의 방학…. 3월부터 연구년을 맞은 박인숙(54) 울산대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보건복지부지정 선천성 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 연구센터장)는 여전히 매일 병원에 출근하고 있다. 연구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주어진 1년의 휴가를 자진해서 6개월로 줄였다. 실은 1주에 한번 외래 진료까지 하고 있다. 그는 "환자의 맥이 끊어질까봐"라고 말하지만, 얼마든지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태아가 부당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고, 한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다는 의사로서의 열정에서다."손가락 한 개만 더 있어도, 심장에 구멍 하나만 발견돼도 무조건 아기를 지우겠다고 우깁니다." "기형아 진단을 위한 양수검사나 혈액검사에서 조금만 수치가 높아도, 의사가 고개만 갸우뚱해도 산모들은 더 이상의 정밀 검사를 거부하고 아기를 지우지요."

박 교수는 현대의학의 발달로 점점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각종 기형아검사가 오히려 무분별한 낙태로 이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3차원에서 이제는 4차원 영상기술로 태아가 엄마의 자궁 안에서 손가락을 빠는 모습까지 볼 수 있게 된 첨단 진단법이 오히려 태아의 기형이 발견된 산모들에게 쉽게 아기를 포기하고, 낙태를 결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태어나는 신생아는 약 55만명. 인공유산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의료계는 이보다 3∼4배가 많은 150만∼200만 건 이상으로 추정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2001년)에 따르면 전체 낙태아 가운데 4.6%는 태아이상, 10%는 태아이상이 우려돼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무려 22만명의 태아가 여기에 해당한다.

박 교수는 "무한 경쟁사회에서 완벽한 아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 눈에 보이는 선천성 기형이 없다고 평생 완벽한 삶을 누릴 보장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현대의학으로 대부분 선천성 심장기형은 완쾌가 가능한데도, 기형이 발견됐다고 무조건 아기를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선천성 심장 기형의 경우 전체 신생아 100명당 약 1명에서 발생하고, 이 가운데 약 절반 미만이 수술이 필요한 경우이지요. 수술받은 신생아의 약 90%이상은 완쾌가 가능하며 평생 정상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어려운 경우는 10%미만이지요." "하지만 수술 한번으로 나을 수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아기를 지워달라고 요구하는 산모들 때문에 너무 황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 '당신이 키울거냐'고 멱살잡이 당한 일도 많아요. 건강하다는 아기도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병치레를 하나요? 평생 맹장수술 한번 안하고 살 자신 있나요? "

서울아산병원의 치료성적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최근 4년 동안 약 120명의 신생아가 엄마 자궁에 있을 때 심장기형으로 진단받았으나, 수술 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산모의 산전 검사에선 태아의 심장기형이 의심됐으나, 정상아로 태어난 경우도 많다. 심장 칸막이에 구멍이 있거나, 한쪽 심실이 비정상적으로 크다고 진단받았으나, 정상아로 태어난 신생아도 50여명이 된다.

과거 치료성적이 좋지 않았던 심장 기형 가운데 최근 완쾌가 가능해진 경우도 많다. 대동맥과 폐동맥의 연결부위가 뒤바뀐 완전 대혈관전위 같은 심장기형이 대표적인 예. 출생직후 응급심장수술만 가능하다면 태아의 생존율은 100%에 가깝다.

그는 "현재 임신중절이 묵인되는 태아이상은 염색체 이상이나 심장 뇌 신장 등 장기에 심각한 기형이 동반한 경우"라면서 "기형이 확실하지도 않거나 완쾌가 가능한 기형을 가진 아기들이 대부분 낙태된다는 사실은 재앙"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를 찾아오는 사람 가운데는 여러 병원에서 심장기형을 진단받고도, 어떻게 해서든 살려만 달라며, 주어진 생명을 잘 키워보려는 젊은 부모도 많다.

"환자에게 진단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상담이지요." 일단 기형이 확인되면 치료법 자연경과 예후 등에 관해 상담해주고 출생 후 치료에도 미리 대비해야 신생아에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1차 의료기관에서 기형이 의심되면 즉시 3차 의료기관의 기형전문가에게 산모를 보내서 정밀 진단을 받도록 하는 것이 부당한 임신중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진단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만큼, 반드시 이중점검(진단)과정이 필요하다"고 권했다. 선천성 기형이 의심돼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 태아의 부검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선천성 기형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주 편집위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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