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우방인 미국과 프랑스가 이라크전을 둘러싼 이견으로 적대감까지 표출하는 '나쁜 사이'가 되고 있다. 전쟁 명분을 둘러싼 논전이 국민간 감정싸움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매파들은 프랑스와 독일을 '전략적 적'으로 간주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프랑스에서는 양국간 우의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훼손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프랑스 르몽드지는 27일 미 정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장,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중동문제 전문가 마이클 르딘이 최근 한 회의석상에서 프랑스에 독설을 퍼부었다고 보도했다. 르딘은 "2003년에 프랑스와 독일이 전략적 적이 되는 일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비난했다. 펄 위원장은 한술 더 떠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사용하면 참전하겠다고 말했는데 그가 전쟁을 꺼린 것은 화학무기가 겁났기 때문일 것"이라며 "시라크와 후세인의 관계는 각별하다"고 비아냥댔다. 울시 전 국장도 "프랑스에 대한 분노는 엄청난 수준이며 미국인들은 그것을 잊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민들도 프랑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고 국회의사당 구내 카페테리어에 이어 다른 간이음식점들도 메뉴판에서 '프렌치 토스트' '프렌치 프라이' 등의 '프렌치'를 지우고 '자유(Freedom)'로 바꾸고 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1도 식사메뉴에서 '프렌치 토스트'를 제외하고 대신 크림 치즈에 포도를 곁들인 '자유 토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프랑스도 발끈하고 있다. 도미니크 드 빌팽 외무장관은 "미영 연합군이 화학무기 공격을 받으면 도움을 제공하겠지만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참전 불가의사를 천명했다.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는 반전 시위가 더욱 거세지고 있고 파리와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일부 과격 시민들이 미국의 상징인 맥도날드를 공격했다. 26일 새벽 보르도에서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2.5m크기로 축소, 중심가에 세워둔 복제품이 방화로 훼손됐으며 미국의 9·11테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기념물도 부숴졌다. 알랭 쥐페 전 총리는 "국가간 갈등이 생기더라도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기념물들은 보존해야 한다"며 종전 후에도 앙금을 없애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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