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다소 불안하게 비쳐졌던 한미관계 조정을 위해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이 시점에서 한국 외교가 특별히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올해로 한미동맹 50년이다. 반세기 동안 한미동맹은 여러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 한국 안보에 근간이 되어 왔고, 경제성장의 버팀목이 되어왔다. 동맹관계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은 어느 일방에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또한 한미동맹이라는 제도를 통해 냉전기간 동북아 질서유지의 주도적 역할을 했고, 그 틀 속에서 미국은 정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해 왔다.
동맹은 일방시혜적 제도가 아니다. 동맹의 틀 속에서 양국간 공동의 이해관계는 적절히 조정되어 왔다. 최근 한미관계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 우리 스스로를 '은혜를 저버린' 국가 운운하는 것은 가당찮다.
세상의 어떤 현상이나 제도건 처음부터 불변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있는가? 처음부터 잘 짜여진 형태로 '주어져 있는' 것은 없다. 특히 제도는 그 운용 범위와 방법들이 변화하는 역사의 과정 속에서 행위자들의 판단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 진다.
국가간 동맹도 마찬가지다. 50년 한미동맹은 지금 중요한 조정국면에 와 있다. 국내외의 환경변화 때문이다. 변화는 다소의 불안감을 동반한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동시에 과거의 경험은 늘 '안전'했던 그 무엇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안전'에 대한 인식은 곧잘 관성을 가지면서 작동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의 근간이 무너진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특히 냉전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던 '관성적 안전'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한미관계가 극히 위태로워졌다고 정부를 질타해 왔다. 변화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감은 새로운 시대적 환경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냉전기간 동안에 효과적으로 작동했던 한미동맹관계는 냉전이후 환경변화에 따라 탈냉전형의 새로운 동맹형태로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주한 미군의 병력조정이나 재배치 문제는 미국측에서 이미 탈냉전기 초반부터 구상해 왔던 사안이다. 그것을 노무현 정부 초기의 미숙한 외교 탓으로 돌리거나 한국사회 일각의 반미정서와 굳이 결부시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50년 동맹의 근간 위에서 한미관계의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할 때다. 미국도 그러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한미관계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거듭나야 한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지와 안정적 질서유지가 양국관계 공통이익의 출발점이다. 공통 이익이 존재할 때 그 구체적 실천 방법들을 찾아내는 게 외교다. 미국은 여전히 동맹국으로서 한국안보에 책임을 가지고 있고, 가져야 한다. 50년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해 왔던 근간이 한미동맹이었고, 그 사실은 앞으로도 당분간 유효해야 한다.
인계철선 (tripwire) 개념만이 유일한 전쟁억지 기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전쟁방지를 위한 뚜렷한 의지표명도 억지의 한 방편이다. 그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 대미외교여야 한다.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방식에도 다소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국가간 관계에서 어떻게 완벽하게 일치된 이익만이 존재하겠는가?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공감대 위에서 정책들은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한편의 일방통행적 발상이 아니라 조정을 거쳐 합의를 통해 추진한다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한미동맹 50년을 통해 제법 성숙해진 한국 외교의 역량을 보여줄 때다. 당당해야 할 때는 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5월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동갑내기 양국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평화문제를 논의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 기 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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