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7일 국가인권위의 반전(反戰) 성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 속에는 노 대통령이 이라크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노 대통령은 국내외 반전 여론의 정당성을 수긍하는 바탕 위에서 미국에 대한 전쟁지원 문제를 풀어나가려 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대(對) 이라크전 파병이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이지만 반전 여론에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노 대통령은 여야총무에게 파병 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면서 "필요하면 크로스보팅(자유투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는 동의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하지만 일사불란한 모양새를 갖출 필요는 없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청와대 내에서는 "파병이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목표로 한 전략적 선택이라면 오히려 국회에서 반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표결이 이뤄지는 것이 나쁠 것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가 파병을 강행하는 모습이 되기 때문에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발언권이 커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청와대는 그러나 노 대통령이 내심 파병 동의안의 부결을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얘기"라면서 "민족의 생존권과 직결돼 있는 사안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다룰 수는 없다"고 일축했다. 노 대통령은 27일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대사와의 오찬 회동에서도 주로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화제로 삼았다. 이날 오찬에서 허바드 대사는 한국 정부가 이라크전을 감행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준 데 대해 노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이라크전 종전 후 정치범 수용 등 교도소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사실상의 추가 파병을 요청한데 대해선 강하게 고개를 가로 젓고 있다. 공병대 파견 계획에 대해서도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인명 피해가 생길 수도 있는 파병 요청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전의 향후 전개 양상에 따라서는 추가 파병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데 청와대의 고민이 있다. 전비 분담의 문제도 앞으로 민감한 현안이 될 수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파견 병력의 배치 지역 문제 등 앞으로 미국과 조정해야 할 사안이 많다"면서 "사안들이 모두 여론에 민감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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