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26일 이라크전쟁 반대입장을 담은 '이라크전쟁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을 발표한 이후 유시춘(53·사진) 인권위 상임위원은 연신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인권을 유린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 가만히 앉아만 있으라는 말인가요?"
인권위가 의견서를 내는데 핵심역할을 한 유 상임위원은 야당과 일부 언론의 공세에 대해 "'국가기구가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의견을 공식 발표했다'며 이곳저곳에서 딴지를 걸고 있지만 우리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국내외에서 반전(反戰)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심각한 정체성 갈등을 겪었다"는 유 위원은 급기야 24일 인권위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인권위도 이라크전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25일 인권위 직원들이 반전 성명을 낸 데 이어 인권위가 공식적으로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하면서 '파병과 전쟁반대' 문제는 곧바로 '국가적 이슈'로 부상했다.
유 위원은 원래 1973년 중편 '건조시대'로 등단한 소설가이자 고교 교사였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된 동생 유시민(44·개혁국민정당 전 대표)씨의 옥바라지를 돕다 1985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창립 총무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1년 11월부터 인권위 상임위원직을 맡고 있는 그는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만 인권위가 지향하는 참다운 인간 세상을 향한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며 "인권위 직원들의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과 자세가 다른 공무원 사회에도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직도 대작에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유 위원은 "파병 문제를 언급하지 못해 아쉽다"며 "대통령의 전략적 선택 역시 우리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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