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락 도시라는 오명을 씻고 창조적 문화도시로 거듭나기위해선 문화 행정이 바로 서야 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문화예술인이 살고 있지만 변변한 문화시설이 과연 얼마나 있습니까."19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구 풍동 백마역 부근의 한 카페. 일산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인 수십명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잠만 자는 베드타운이 아니라 문화를 생산, 향유하는 문화도시가 돼야 한다"며 "주민 중심의 문화정책, 문화사업을 펴야 한다"고입을 모았다.
일산신도시 등 고양시의 문화예술인들이 문화도시 건설을 표방하며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문화도시 고양을 생각하는 문화예술인 모임'(가칭)이 그것. 고양 거주 문인 화가 영화인 연극인 등 30여명이 주도하는 모임은 이달말 정식 발족한다. 김남일 이순원 전성태(소설가) 김소연 강형철 정해종 장철문 김사인(시인) 홍성담 임정희 조상근 주재환 한광숙(화가) 여균동 장선우 정지영 김기덕(영화감독) 김창남 신현준 정준영(문화비평가) 정병규 홍 석(출판인) 현준만 탁현민(문학평론가) 이은홍(만화가) 강산에(가수) 이지누(사진작가) 안태경(공연기획가) 유상기(음반제작자) 정희섭(전 국립극장 공연과장) 등 유명 인사가 많다.
이들이 모임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양의 문화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문화행정의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가한 농촌이던 고양은 일산신도시 조성을 계기로 짧은 시간에 인구 80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했고 지금은 5년 안에 인구 100만명의 광역시 승격이 예견될 정도다. 일산신도시 건설 당시 쾌적한 전원주거도시를 꿈꾸며 고양으로 옮겨온 문화예술인은 무려 1,000여명. 그래서 '문화특별시'라는 명예로운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늘어나는 아파트 만큼 러브호텔, 술집도 많아졌다. 향락업소 즐비한 소비지향적 기형도시. 주민 문화공간도, 예술인의 활동 무대도 태부족이다.
모임의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은 영화감독 여균동(46)씨는 " 열악한 문화환경이 모임 탄생의 일등공신인 셈"이라고 말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온 여균동 김남일 안태경 김창남 정희섭 씨 등이 일산의 향락도시화, 문화시설 부족을 걱정하다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건넸고 많은 동료들이 동참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모임 제안서에서 "단순 주거타운이 아닌, 수도권 문화 중심도시가 돼야 한다"며 "대중이 공유하고 직접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드는데 문화예술인들이 직접 나서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고 밝혔다.
'고생모'의 일차적 목표는 주민 문화시설 확충. 그 첫번째 사업은 일산문화센터내 대규모 오페라하우스(2,000석)와 콘서트홀(1,500석) 백지화 운동이다. 정발산 부근 1만6,000평에 2005년 들어서는 일산문화센터는 지하2층, 지상4층의 초대형 건물로 무려 1,068억이 소요되는 지역 최대의 문화시설. 고양시는 일산문화센터가 들어서면 지역 문화가 한단계 도약할 것이라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고생모는 생각이 다르다. "오페라하우스는 특수층의 전유물이 될 것이고 콘서트홀은 일부 방송사의 연예프로 제작공간이 될 게 뻔합니다. 문화센터 세부 시설의 설계를 변경, 주민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균동 감독은 "대중을 무시한전시적 문화행정의 표본"이라고 꼬집은 뒤 "현재 전국 200여 곳의 문화센터, 문화회관이 적자를 내고 제 역할을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작가 김남일은 "거대한 시설에는 관료주의 냄새가 배어있다"며 "문화도시 고양에 필요한 것은 주민이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부담 없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모임은 고양시에 일산문화센터 관련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한편 공청회를 개최, 주민과 지역 문화예술인의 의견을 모아 지역 실정에 맞는 소규모 공간으로 꾸미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기로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일산 호수공원내 '노래하는 분수대'와 대규모 관광숙박단지 사업 등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대안을 마련키로 했다.
여균동 감독은 "모임이 정식 발족하면 주민들이 어우러지는 공연, 전시회를 수시로 열어 고양이 진정한 문화도시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원영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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