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일렉트로닉스의 김충훈(57) 사장은 매일 아침 5시30분이면 경기 용인시 수지읍 자택을 나선다. 자택 부근 체육관에서 조깅을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8월 사장에 취임한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김 사장은 매일 5㎞를 달리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가전 명가(名家) 대우의 부활을 이루자'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이다.김 사장이 조깅을 하는 동안 부인 박봉기(50)씨는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김 사장은 출근하는 차 안에서 아내가 건네 준 샌드위치와 김밥을 먹는다. "부인이 고생이 많을 텐데 미안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김 사장은 "사장에 취임하기 전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칠 테니 도와달라'고 가족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과거 대우전자의 영상 가전부문을 인수, 지난해 11월 '클린 컴퍼니'로 새로 태어난 신설법인. 대우전자가 1999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 두 차례의 해외 매각실패를 거쳐 정상화로 가닥이 잡히기까지 무려 3년의 아픔을 겪은 후였다. 1973년 대우실업(주)으로 입사한뒤 대우전자로 옮겨와 95년 회사를 떠났던 김 사장은 채권단의 요청으로 7년 만에 '대우맨'으로 돌아왔다.
김 사장은 복귀 전 (주)효성에서 재무본부장 겸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냈다. '끗발 좋은' 구조조정본부장을 그만두고 대우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김 사장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운명'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운명보다는 '오기'가 더 정확한 답인지도 모른다. 젊음을 바쳐 이뤄냈던 대우의 몰락을 바깥에서 속절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그에게서는 상처 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강한 오기가 느껴진다.
7년 만에 회사 정상화를 책임질 구원투수로 친정에 돌아온 김 사장에게 맡겨진 첫 임무는 안타깝게도 구조조정이었다. 살과 뼈를 깎아내는 구조조정을 해야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만2,000명이었던 직원이 5,100명으로 줄어 있었지만, 다시 1,300명을 떠나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김 사장은 "여력이 생기면 모두 다시 부를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구조조정에 이어 각 사업 부문을 통폐합하고 해외 거점을 조정하는 등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한 김 사장은 출범직후 전 직원과 함께 충북 음성 꽃동네를 다녀왔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해도 축복임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마음가짐을 다진 직원들은 출범 두 달 만에 200억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꼬박 3년 만에 신제품 발표회를 가진 지난달 20일은 잊지 못할 날이었다. 그는 "대우가 살아있음을 세상에 알리던 날"이라고 했다. "경쟁사가 한 달이 멀다 하고 신제품 발표회를 할 때마다 바라보기만 하던 심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이를 악물었다. 당연히 발표회가 끝난 후 열린 회식자리는 울음바다가 됐다.
대우가 올들어 내세우고 있는 컨셉은 '친가족·친건강·친환경'이다. 김 사장의 소신은 뚜렷하다. "기능과 디자인만 강조하는 가전제품은 한계가 있습니다. 제품에 혼을 담아야 합니다." 그래서일까. 나노실버 기술을 채택한 양문형 냉장고는 출시 한달 만에 4,000대 가량의 판매고를 올리는 인기를 끌고 있다. 연일 공장라인이 풀가동중이다.
김 사장은 유별난 사람이다. "내가 쓰지 않는 제품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는 없다"며 해외생활 16년 동안 단 한번도 외산 가전을 사지 않은 '소신'은 대우에서 유명하다. 17일부터 구미 광주 인천 등 공장 3곳을 순회하며 임직원 가족 초청 제품시연회를 가진 것도 "남편, 오빠, 아들이 일하는 생산라인을 직접 보고 제품이 어떻게 나오는 지 알아야 한다"는 김 사장의 생각 때문이었다.
김 사장의 경영모토는 '이익 없는 곳에 사업 없다(No Profit No Business)'다. 과거 대우가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확장을 하는 동안 부실을 키웠던 쓰라린 교훈때문일 것이다. 김 사장은 "과거 가전업계를 선도했던 기술력을 앞세워 이익 실현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국민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난 만큼 이익이 생기면 국민에게 빚을 갚겠다"고 약속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올해 매출 2조7,000억원, 경상이익 1,00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워크아웃 졸업을 하고 상장기업으로 거듭나는 것도 또 하나의 목표다. 김 사장은 "대우는 국내 기업에서는 처음으로 세계경영을 외치며 남다른 열정과 도전정신을 보였던 기업"이라며 "전 직원과 똘똘 뭉쳐 나가면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 김충훈 사장은 누구
▲ 1945년 서울생
―군산고―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가족관계 부인 박봉기(50)씨와 1남
▲ 1973년 대우실업(주) 입사
▲ 1981년 대우실업(주) 리비아 건설본부 관리부장
▲ 1986년 대우실업(주) 로스엔젤레스 법인 관리담당 부사장
▲ 1991년 대우전자 프랑스법인 대표
▲ 1994년 대우전자 아시아지역 총괄담당
▲ 1995년 동양폴리에스터 관리담당 상무이사
▲ 1998년 (주)효성 재무본부장 겸 구조조정본부장
▲ 2002년 8월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장
■김사장의 "나의 좌우명"
나의 좌우명은 '생행습결'이다. 논어쯤에 나오는 한자성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가 만든 말씀이다.
'생행습결'은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며, 습관이 바뀌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평소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어야 바람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학창시절이나 ROTC 소대장 시절,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가슴 한 편에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노력 없이 단지 좋은 생각만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좋은 생각이 좋은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임경영, 품질경영, 인재경영을 나름대로 경영철학의 3대요소로 삼고 있는 것도 '생행습결'이라는 좌우명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내가 본 김사장
김충훈 사장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다.
그와 나는 연세대 캠퍼스 백양로를 오르내리며 청년장교 훈련을 받던 1963년부터 방송인과 기업인으로서 40년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는 ROTC 5기로 임관하여 소대라는 작은 조직을 통해 통솔력과 지휘력을 키웠다.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책임감도 체득했다. 이러한 자질은 대우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후 유감없이 발휘됐다. 70∼80년대 산업화와 수출입국의 일선에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송곳 끝 같은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또 뉴욕, 트리폴리, 라고스, 파리 등에서 현장의 주재원이나 관리자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세일즈 뿐만 아니라 풍부한 국제감각을 익혀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소양도 쌓았다.
이제 김충훈은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선장이다. 한때 세계 경영을 모토로 국내 전자업계의 선두를 달리던 대우의 구원투수가 된 것이다. 야구경기는 다음 게임이 있지만, 기업의 패전투수는 누구로부터도 용서 받을 수 없다.
김 사장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 한다면 반드시 역전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또 넓은 포용력과 따뜻한 가슴으로 직원들을 사랑한다면 머지 않아 살맛 나는 대우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김충훈 사장이 특유의 추진력과 친화력,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잘 발휘해 우리 경제를 이끄는 대표적인 CEO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 본다.
차 인 태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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