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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동북에서의 북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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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동북에서의 북한 생각

입력
2003.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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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의 역사 교육속에서만 희미하게 그려지는 중국 동북지역. 많은 노래와 소설, 시에서 그려졌듯이 이곳에는 선열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고 곳곳에 유적과 유골이 묻혀 있으련만, 지금 보이는 동북은 역사를 잊고 그저 잘 살아보려는 사람들의 경쟁이 난무하는,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지역같아 보인다.그러나 이땅은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과거를 되새기면서 지금을 성찰하게 하며, 잊었던 역사의 교훈과 진리를 깨우치면서, 올곧은 미래를 다시 그리게 하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동북은 분명 이국땅이지만, 이국같지 않은 정과 슬픔이 함께 배여 있는 곳이다. 학창시절 역사교육에서 받은 동북은 자연적 광활함 뿐이 아니라 선열들의 영웅담이 수없이 많이 그려진 곳이어서 정의와 용맹의 분화구로 각인됐고, 나라가 없을 때 겪게 되는 타향살이의 애달픔이 집약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하라고 할 때도 동북의 애국선열들을 내세웠고 우리의 안일함을 일깨울 때도 동북의 타향살이가 교훈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현대의 동북은 남과 북, 해외의 모두가 모여 정치를 논하고 경제활동을 영위하며 이산이 다시 집합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연길이나 심양 거리의 오색찬란한 불빛 속에는 한국과 북한식당이 나란히 마주보며 영업을 하고, 동북의 도심 곳곳에서는 비공개적이지만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서로 부둥켜 않고 울고 불며 그간의 서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동북의 호텔들은 남북의 기업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교역과 투자를 논하는 비즈니스 거점이 된지 오래다. 북한식당에서는 한국 손님들이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함박꽃 미소로 춤과 노래를 한바탕 해댄다. 그 속에는 북한 선전가요도 있지만, 남한 노래도 있어 찾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마주앉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그 어느 시대를 되돌아 보면 언제 이렇게 변했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마음을 흥분시킨다.

어디 그 뿐인가. 남한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는 그들이 이제는 남한 기업인들을 보기만 하면 지원과 투자를 해 달라고 붙잡고 매달린다. 그러는 얼굴이 너무도 간절하여 차마 외면하기가 어렵다.

그 뿐만이 아니다. 동북은 북녘의 주민들이 허기를 채우려고 고향을 떠나와 떠도는 곳이기도 하여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는 두만강을 넘다가 동상을 입어 발을 잘랐다는 소문도 돌고, 어떤 이는 노동착취와 인신매매 속에 고통받고 있다는 가슴 찢는 소식이 난무하는 곳이 또한 동북이다.

동북의 항일 영웅들을 배출한 남북의 후손들이 어찌하여 아직도 이곳에서 울고 웃고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맛보아야 하는지 통탄스러움만 느낀다. 이제는 당당히 대접받고 당당히 대륙을 개척하는 또 다른 영웅들을 배출해야 하는 우리들이 아직도 서로를 찾아 다니고 멸시를 당하고, 그러면서도 불밝은 식당가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식의 웃음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지 나 자신이 미워질 뿐이다.

한쪽에서는 동북아 경제중심지라는 가슴 벅차게 하는 비전이 그려지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당장의 끼니를 때우기 위한 처절한 노력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라크와 같은 참상이 한반도에서도 벌어질지 모른다는 듣기에도 소름끼치는 낱말들이 퍼지면서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광활한 동북땅에 서서 선열의 넋을 새기는 거창한 자세가 아니더라도, 동북의 자그마한 북한 식당에 앉아 접대한 처녀를 보며 생각되는 것은 이들의 맑은 눈동자와 그나마 남아있는 순박한 웃음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게 남북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열들의 업적이 담겨있는 동북지역을 포함하여 남북이 평화 속에서 풍요롭게 발전하는 새로운 동북아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 명 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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