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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총화… 흥행의 전령사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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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총화… 흥행의 전령사 영화 포스터

입력
2003.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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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고의 시작, 영화 마케팅의 최전방, 영화 흥행의 전령사…. 한국 영화가 양적, 질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작품' 수준의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동갑내기 과외하기' '몽정기' '색즉시공' 등 흥행작들은 포스터부터 기발한 아이디어를 자랑했다. 이관용, 그림 커뮤니케이션, 크랭크인, 김정민 디자인실 등 포스터 디자인 전문 제작자가 늘어나 포스터를 보는 즐거움도 관객의 행복 가운데 하나가 됐다.

설레는 이름의 포스터 디자인 기획사 '꽃피는 봄이 오면'(꽃봄)도 그런 전문 제작자의 하나다. 꽃봄은 '몽정기' '박하사탕' '죽어도 좋아' '나쁜 남자' 등 개성 넘치는 포스터 디자인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박하사탕'을 필두로 영화 광고 시장에 뛰어든 꽃봄은 영화계에서 포스터 광고에 관한 한 '고집스럽게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곳'이라는 평을 받는다.

포스터만 보고도 영화 보고 싶게

꽃봄의 모토는 '포스터만 보고도 영화를 보고 싶게'이다. '나쁜 남자'처럼 누드 여성의 뒷 모습으로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포스터, '집으로…'처럼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느낌을 주는 포스터가 그들이 만들고 싶은 포스터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손과 발 머리를 고생시킬 각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화제를 모은 '몽정기' 포스터는 별난 상상력의 소유자인 만화가 현태준의 만화를 바닥에 깔고 보티첼리의 1486년작 '비너스의 탄생'을 우스꽝스럽게 패러디, 섹스 코미디의 경박스러움을 고급스러움으로 바꿔 놓았다.

김혜진 실장은 '몽정기'의 캐릭터 작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시놉시스를 본 뒤, 경험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정리했다. 무엇보다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20대 여성 관객을 움직이려 했다. '몽정'이라는 더럽다는 느낌을 귀엽고 섹시하면서도 거부감 없이 볼 수 있게 한다는 컨셉을 잡았다. 재미있는 성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만화가 현태준씨의 만화를 바탕에 깔았다."

전략 짜기, 회의하기, 고집부리기

꽃봄의 일은 달랑 포스터 한 장 만드는 게 끝이 아니다. 시나리오 디자인부터 각종 보도자료와 전단에 이르기까지 일이 끝이 없다.

시나리오 검토는 기본이고 영화를 단 한 줄로 압축할 컨셉을 도출하기 위해 수많은 회의를 반복한다. 가령 '해적 디스코왕 되다' 같은 영화는 '80년대 복고풍 디스코를 상징적으로 처리한다'는 식이다.

'나쁜 남자'는 "야하되 쇼킹한 느낌을 주자"는 방침을 정하고 '고급스럽게 야할 수 없을까'를 두고 고심했다. "배우 서원의 몸이 비례는 무척 뛰어났지만 워낙 말랐다. 허리를 펴고 등뼈가 나오게 해서 최대한 볼륨 있는 몸을 만들어야 했다. 한 컷 한 컷 포스터 사진을 찍을 때마다 배우에게 '허리 나오게 하세요' '등을 더 펴세요' 하며 까다롭게 주문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찍었는데 못할 짓이었다." 김혜진 실장은 그때를 돌이켜 보며 내내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다.

'죽도록 일하거나' 아니면 '죽어도 일할래'

그렇다고 해서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배우들이 피를 내뿜는 장면을 연출한 '죽거나 나쁘거나'는 한 푼도 받지 않고 했다. "자투리 필름 얻어다가 만들고 다른 영화 촬영장에서 얻은 소품용 피(血)를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쓰는 형편이었죠. 피를 뱉을 때도 아끼라고 했을 정도니 어떻게 돈을 받을 수가 있겠어요."

알려진 배우가 없어서 컨셉을 '춤추는 듯한 액션'으로 가져갔다. 그런 느낌으로 피로 쓴 듯한 글자체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하사탕'처럼 '징하게' 1년 반을 끌면서 만든 디자인도 있다.

꽃봄 홈페이지엔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이들의 글이 수북하다. "얼마나 힘든지 모르니까,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니까.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는 게 설립자이자 대표인 김 실장의 속내다. 그러나 "포스터 촬영 현장에서 모두 만족할 때 나오는 안도의 한숨"(조지연) "내가 한 광고를 붙인 버스가 지나갈 때"(홍유선) "첫날 관객 터질 때"(김혜진)의 뿌듯함 때문에 이 일은 강한 중독성을 갖는다.

"매일 새롭게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과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자부심" 사이에서 그들은 오늘도 아이디어 쥐어짜기에 여념이 없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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