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생전에 고국에 다시 올 줄은 정말 몰랐어. 이게 꿈은 아니지?"26일 오후 인천공항 입국장. 60년만에 중국에서의 타향살이를 끝내고 고향땅을 밟은 하상숙(75·사진왼쪽), 백넙데기(81) 할머니의 여권 국적란에는 '조선'이라는 두 한자가 또렷이 박혀있었다.
이들은 중국에 거주하다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는 첫 북한 국적의 종군위안부들. 중국 우한(武漢)에 거주하던 두 할머니는 해외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영구귀국에 힘쓰던 서울 상도성결교회 김원동 장로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고향길을 밟게 됐다.
17,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두 할머니의 한평생은 말 그대로 '지옥살이'였다. 애초 군인들을 환송해주는 위문단 일로만 알고 일본군을 따라나선 두 할머니는 아이를 못낳게 하는 주사를 맞고 하루 20여명의 일본군을 상대하는 '성노리개'생활을 해야만 했다. 일본 패망 이후 귀국길에 오르려 했으나 망가진 몸으로는 차마 돌아올 수 없어 중국에 눌러앉았다가 대부분의 재중동포들이 그랬듯이 결국 북한 국적을 선택했다. 하 할머니는 "평양을 거쳐 중국에 왔으니 북한 국적을 얻으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공항에서 60년만에 동생 하용운(67)씨와 재회하고 선 지난 청춘을 생각하며 오열했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국적의 위안부 할머니는 두 할머니와 김의경(91) 할머니 단 3명 뿐. 대부분 고국을 그리다 이역땅에 묻혔고 김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형편이다. 위안부 일을 거부하다 군인장교에게 왼쪽 검지손가락을 잘리기도 했던 백 할머니는 "고향의 오빠와 세동생이 살아있을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국에 남은 현지 가족들을 뒤로하고 고국을 택한 이들은 이날 종군위안부 배상 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일본법원 판결 소식에 "아직도 일본이 그렇게 나쁜 일을 하고 있느냐"며 분개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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