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불태워 주가를 방어하라.'증시 침체로 주가가 하락하자 기업들이 자기회사 주식(자사주)을 싼 값에 매입하거나 소각해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우호 지분을 늘리고, 유통물량을 줄여 주가도 관리하는 이중 효과를 내고 있다. 그동안 주가가 오를 때마다 증자(增資)를 통해 많은 물량의 주식을 시장에 내놓고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가던 기업들이 지난해 사상최대 실적으로 거둬들인 자금으로 설비 투자 대신 자사 주식을 대거 거둬들이면서 증시의 기업 자금 조달 기능은 사라지는 대신, 주주 가치는 다소 높아지고 있다.
자사주 취득 160% 급증
올들어 3개월 동안 상장 기업들이 사들인 자사주는 2억주를 넘고, 금액으로도 3조원을 돌파했다. 증권거래소가 올 1분기 상장기업 자사주 취득 및 처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달 25일까지 자사주 매입 규모는 3조5,48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3,645억원)보다 160.1%나 증가했다. 주식 수도 지난해 1분기 1억650만주이던 것이 올해는 2억846만주로 95.7%나 늘어났다. 전체 상장기업의 15.5%에 해당하는 106개 기업이 올 1분기 자사주 매입에 나서 지난해 같은 기간 76개사 보다 39.5%나 늘어났다.
주식소각=주가 상승
이라크 전쟁 등 대외 불안요인으로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도 자사주 취득·소각에 나선 기업들의 주가는 비교적 탄탄한 흐름을 보였다. 대신증권이 올들어 자사주 소각을 결의한 상장기업 6개사의 주가흐름을 조사한 결과, 자사주 소각 결의일부터 25일까지 평균 15.59% 올라 같은 기간 종합주가지수 평균 상승률 0.27%를 크게 웃돌았다. 하나증권이 40.30%나 오른 것을 비롯, 한국유리공업(15.48%), 금강고려(14.94%), 삼성전자(10.87%), 현대하이스코(9.62%), 현대모비스(2.34%) 등 순으로 상승했다. 박성재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은 주식 유통물량 감소와 주당순이익(EPS) 증가 효과가 생겨 주가 상승의 모멘텀이 된다"고 말했다.
자사주,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기관투자가나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주식을 사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량 기업들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소각은 증시 수급 부담을 줄여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익이 나지 않은 기업이 보유 현금으로 자사주를 싼 값에 매입한 경우 증시가 상승하면 언제든 시장에 다시 나올 가능성이 높아 주의해야 한다. 단순히 일시적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익배당 한도를 초과해 자사주를 사들였다면 반드시 3년 안에 이를 되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일부 기업은 당초 취지와는 달리 회사돈으로 자사주를 사고 팔아 시세조종을 통해 대주주의 이익을 챙기거나 주가 관리에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기업들이 합병이나 영업양수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등으로 자사주를 사들인 경우도 많은 만큼 이들 주식이 시장에 다시 나올지, 아니면 소각될지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한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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