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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30) 메들리와 메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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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30) 메들리와 메탈

입력
2003.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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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광 버스 최대의 히트곡이 테크노 뽕짝이라는 이름의 가요 메들리라는데, 그 역시 따지고 보면 내가 제일 먼저 했다. 그러나 내가 여러 노래를 묶는 방식은 요즘 메들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요즘은 컴퓨터 리듬 박스가 만들어 내는 똑 같은 박자에 여러 가요를 한 데 묶어 부른다. 그러나 나의 메들리는 곡 마다 박자나 분위기가 달랐다. 나의 대표곡 각각에 나름의 색깔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1980년 지구레코드사에서 나온 음반 '신중현과 뮤직 파워'는 대마초 사건 이후 5년의 공백을 거치고 나온 첫 작품이었다. 짧은 가방끈이지만,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음반에 내 글도 몇자 적어 나름의 의미를 주고 싶었다. '인사 말씀'이라는 다소 촌스런 제목 아래 씌어진 그 글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결국은 5년이란 세월이 흘러 80년대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중략) 이 기회에 나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곡을 오랜만에 선보이게 된 것을 나로서는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가요 최초의 메들리 음반이라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나의 공백과 재기의 몸짓에 이은 새출발이라는 의미쪽으로 무게가 더욱 얹혀져 있음이 읽힌다.

'아무도 없지만', '저무는 바닷가', '너만 보면' 등 신작은 물론, '신중현 히트곡 메들리'를 넣어 나의 과거를 음악적으로 정리했다. 김문숙과 박점미 등 내가 새로 발굴한 신인 여가수들과 함께 나도 몇 곡을 불렀다. '빗속의 여인', '님아', '커피 한 잔', '월남에서 돌아 온 김 상사', '미련', '소문 났네', '님은 먼 곳에', '봄비', '마른 잎' 등 과거 히트곡 18곡이 제각각 다르게 연주돼 한 군데 담겨져 있다. 시종 일관 똑 같은 빠르기로 연주되는 디스코 메들리가 아니라 곡에 따라 리듬이 계속 바뀌었고, 곡 사이사이에는 짧은 간주곡도 넣었다.

사실 메들리란 나에게 아주 익숙한 음악 형식이었다. 미 8군 무대 시절, 나는 미국 병사들이 좋아 하는 팝송들을 한 데 묶어 연주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것은 로큰롤 댄스 홀의 현장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양식이었다. 또 리듬에서도 그때 그때마다 변주(fake)가 심해, 댄스 뮤직으로 해 달라는 지구 레코드사측의 요청이 결과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나로서는 대세를 장악한 디스코붐에 타협한다고 했는데, 만들고 보니 춤출 수 없는 음악이되고 만 셈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앨범 발표후 TV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특히 KBS-TV의 '100분쇼'에는 6개월 동안 거의 매주 출연했을 정도다. 그 같은 대중의 호응을 등에 업고, 이후 뮤직 파워의 작업은 계속 됐다.

1982년에 나온 '신중현과 뮤직 파워'의 2집은 그러나 1집의 대중적 분위기를 완전히 일신했다. 즉, 한국 최초의 헤비 메탈 음반이 되고 말았다. 강렬한 기타에다 내가 메탈 보컬로 키운 김동환이 빚어내는 폭발적 발성은 시대에 맞는 새로운 록을 추구하는 나의 자연스런 음악적 귀결이었다.

그 작품이 알려지자 일본의 대중 음악 잡지 '팝 음악'은 대대적 보도로 호응했다. 잡지 중간에 특집 형식으로 내 얼굴을 태극기와 함께 게재했다. 한국 최초의 헤비 메탈 운운한 것은 새로운 것을 유독 좋아 하는 일본 사람들의 성정에 어울리는 호들갑스런 면도 없지 않아 있다. 당시 나는 그 때가 세계적으로 메탈 붐이 막 일 때라는 사실도 몰랐다. 나로 봐서는 내 음악적 발전의 자연스런 귀결이었던 것이다.

뮤직 파워 작업은 1984년 서라벌레코드사에서 낸 '뮤직 파워 메들리'로 끝났다. 나의 히트곡들을 또 한 번 새롭게 묶은 '신중현 히트곡 메들리'를 1집의 두 여가수가 불렀고, '아름다운 강산'을 내가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당시 내가 살던 방배동의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합창하게 해 신선함을 더 했다.

이 같은 시도는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노래가 세대를 초월한 국민 가요로 거듭 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특히 '너만 보면' 등의 곡은 덩더꿍 등 우리 고유의 장단을 삽입해 한국적 댄스 음악의 가능성을 점쳐 보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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