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3월26일 영국 시인 앨프리드 에드워드 하우스먼이 우스터셔주 포크베리에서 태어났다. 1936년 몰(沒). 하우스먼은 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고전학자로서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 지식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그의 고전 연구는 거의 독학으로 이뤄졌다.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특허국 관리가 된 하우스먼은 11년간 대영박물관에서 밤도와 공부하며 독보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한 뒤, 런던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라틴문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유베날리스, 루카누스 등 고대 로마 시인들의 작품집들을 교정·주역(註譯)하며 당대의 일급 고전학자로 활동했다. '슈롭셔의 젊은이' '마지막 시들'을 비롯한 시집들에 담긴 150여 편의 서정시는 간결한 고전미를 뽐낸다. 그 고전미는 시인이 고전학자가 되기 위해 실천한 절차탁마의 낙수(落穗)일 터이다. 하우스먼은 또 '시의 명목과 본질' 등의 책을 낸 평론가이자 시 이론가이기도 했다.
하우스먼의 생애나 문학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도 그의 시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는 귀에 매우 익을 것이다.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어느 어진 이가 하는 말을 들었지/ '돈이야 금화든 은화든 다 내주어버려라/ 그러나 네 마음만은 간직하라/ 보석이야 진주든 루비든 다 내주어버려라/ 그러나 네 생각만은 자유롭게 하라'// 그러나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으니/ 이런 말은 내게 하나마나였지//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나는 또 그가 하는 말을 들었지/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은/ 결코 보람 없이 주는 법이 없지/ 그것은 많은 한숨으로 보답 받고/ 끝없는 후회에 팔리는 법'// 이제 내 나이 둘 하고 스물이 되니/ 오, 그것은 진실, 그것은 진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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