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신문에서 한 여성의 글을 읽었다. 내용은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이 며칠간의 일기였다. 반전평화팀으로 현장에 남아 있는 그 미국 여성의 보고에 의하면 공습에도 주민들은 의연하게 일상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하루 밥벌이가 아쉬운 서민들이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가게와 식당 문을 열고 카페에도 손님이 찾아 든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쟁은 마치 예고된 허리케인과 같아서 그렇게 대비를 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큰 혼란도 없다는 것이었다.전쟁의 한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신문과 텔레비전마다 침공, 폭탄투하, 파괴, 불길이 치솟는 무시무시한 폭격 장면만 보여주는데도 그 사람들은 다 죽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니, 기적 같다는 생각과 더불어 안심이 찾아 들었다. 더욱이 아이들도 공습이 멈추면 곧바로 골목이나 공터로 나가 축구공을 차며 논다고 했다.
전쟁 속의 작은 여유, 이런 상황엔 그것이라도 오아시스일 수가 있다. 연일 전쟁 속보와 비참한 장면에 시달려온 우리는 이제 공을 차는 아이들만 보아도 다소의 죄의식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아, 물론 이번 전쟁이 정말 큰 희생 없이 끝나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게다가 제발 전쟁 그만두라고, 그 어떤 힘이나 경제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외친다고 해서 중단될 전쟁도 아니라는 것도….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전쟁터의 생존자들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정말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고 놀고 있다면, 사진으로라도 그 장면을 보고 싶은 것이다.
나는 곧 인터넷으로 들어가 전쟁현장 사진 모음 사이트를 찾았다. 50여장이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생존보다 주검이 더 많았다. 백기를 든 채 사살당한 군인도 충격인데 뇌수가 다 사라진 채 죽어 있는 그 이라크 군인들의 모습은 더욱 처참했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쓰지 않기로 되어 있다는 네이팜 폭탄에 의한 사상이라니, 그 무기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죽이는 것이었는지 새삼 전율이 일어나기도 했다.
거기에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이의 주검도 있었다. 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아이, 그 아이도 좀 전까지도 축구공을 차며 놀았을 것이다. 어쩌면 생필품을 사러 나갔다가 그렇게 당했을지도 모른다. 또 다리에 파편을 맞아 울고 있는 여자 아이도 있었다. 그 여자 아이는 대피소에서 나오다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 대피소를 지었을 땐 그곳이 놀이공간으로 알았을 아이들은 전쟁의 이유도 알기 전에 그렇게 희생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전쟁터의 병원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아비규환이라고 한다. 멀리서 날아온 미사일의 작은 파편 하나도 어린 등뼈를 격파시키고, 그렇게 전신을 쓰지 못하다 수술 도중 죽어간다고 한다.
전 세계가 반전 외침으로 들끓고 있는데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물론 교황까지도 평화를 강조하는데도 부시는 전쟁을 강행하고 있다. 오직 유전과 힘의 과시를 위해서 전 인류를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떨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틈타 이스라엘이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는 알고 있다. 이번 전쟁은 미국의 친 이스라엘 매파들이 앞장섰다는 것을. 경제와 영토확장, 그것이 교묘하게 쌍수를 들었다는 것도.
물론 전쟁은 역사적으로도 늘 있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역사 속 존재들이 아니다. 인류를 한 지붕으로 엮어낸 현대인들이다. 이제는 그 울타리를 지켜야 할 차례다. 한데도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주장, '전쟁 대신 인류를 선택하라'는 그 외침이 힘없는 하소연으로 끝날 것인가.
윤 정 모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