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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29)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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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29) 미인

입력
2003.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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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는 시대를 잘 못 만났다. 아무리 개성적이어도 김추자와 같은 대중성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김정미에게 준 '아니야' 같은 곡은 발표된 지 하루만에 금지당했다.나는 이전까지의 모든 관계를 끝냈다. 미 8군 무대 패키지쇼 아니면 나이트 클럽 무대를 위해 숱하게 만들고 또 깨어진 것이 그룹이었다. 살아 남은 그룹이 어디 있었는가. '멤버가 많으면 깨진다.' 당시 내 생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1973년 만든 그룹 엽전들은 나의 새 출발을 상징한다. 원래는 5인조였으나 나는 보다 핵심적 멤버만으로 이뤄진 그룹을 생각한 결과, 그것은 3인조 밴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성 한 지 1년 뒤, 보다 압축적이고 본질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 축소한 3인조 밴드까지 남은 사람은 이남이(베이스), 김호식(드럼) 등이었다. 지미 헨드릭스의 밴드, GFR(그랜드 펑크 레일로드), 크림 등 외국의 출중한 트리오 밴드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바로 거기서 가장 한국적인 가락이 창출했다.

바로 내가 작사·작곡한 '미인'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군들 모르랴.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곧 이어 나오는 기타 선율은 가장 한국적인 5음계(pentatonic)다. 그것은 가장 한국적인 성정에 닿아 있는 노래였다. 그냥 말하듯, 아니 타령하듯 읊어 대는 가락은 실은 서양 사람들에게는 무척 낯설지만 흥미로운 것이었다. 바로 우리의 궁상각치우 음계다.

나는 당시 그 곡을 쓸 때는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일단 관심밖이었다. 다만, 가사는 쉬워야 하고 선율은 좀 더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그룹 더맨을 해산하고 만들었던 그룹은 원래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엽전들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은 한국인을 비야냥 거려서 일컫던 말의 본래 의미를 찾자는 뜻이었다. 흔히들 생각하듯 전혀 반항적이거나 뒤틀린 마음은 없었다. 요컨대 가장 보통 한국 사람들의 가슴속에 있는 바람을 가방 한국적인 선율에 얹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실은 이렇다 할 이름도 없이 나이트 클럽 밴드로 지내오다 내가 어느날 붙은 이름이다

그 곡에 미처 예기치 못 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뜻밖에도 TV 3사로부터 출연 요청이 쇄도했을 뿐더러 나이트 클럽 무대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록 음악이라 하면 예외없이 서구 스타일을 답습하던 그 시절, 나는 진정 한국적인 록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미인'은 무엇보다 무대의 최인기 곡이었다.

그 다음 나의 대표곡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아름다운 강산'이다. 그 곡은 원래 1972년 사단법인 연예인협회 산하 그룹 분실장을 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그 해 봄, 청와대로부터 난데 없는 전화가 걸려 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명령성 요청이었다. 청와대쪽이라면 무소불위의 시절, 그 전화를 받고 나니 참으로 개운치 못 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당 1주일 꼬박 내 작곡 사무실에 출근해 그 작품에 몰두했다. 무엇보다 한국이 어떤 나라라는 사실을 가장 한국적 선율인 5음계에 담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러나 1972년 더맨에 의해 첫선을 보인 그 곡의 첫 반응은 썰렁했다. 국민 홍보용 TV 방송 특집에 18분 동안 첫 소개됐다. 그러나 당시 첫 방영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잊혀 지지 않을만큼 희극적이다. 전국적으로 엄청나게 장발 규제가 퍼부어 지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TV 출연자들의 머리도 짧아야 했다. 정확히는 귀가 나와야 했다. 우리의 결론은 명쾌했다. 귀만 나오면 된다 했으니, 핀으로 귀 바로 위를 찔러 머릿단을 올리면 문제 될 게 없다는 데 만장일치했다. 단, 노래 부르던 박광수만은 머리를 백부로 밀었다.

당시 출연 중이던 로얄호텔 나이트 클럽이 우리의 TV 출연 소식을 듣고는 빨리 밀어버리라고 해 취했던 일이었다. 머리가 빈 사람이 아니고서야, 우리 멤버들의 우스꽝스런 행동을 보고는 뭔가 말 못 할 사연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 방송은 그런데 본격적 장방 단속의 빌미가 돼,이후 백주에 경찰에 붙들려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리는 풍경이 일상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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