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라는 TV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그때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은은한 오카리나 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작년 봄인가 보다. 양평가는 길에 한 흙피리 공방을 방문하면서 오카리나가 바로 우리의 정겨운 흙피리와 같은 악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차에서 내려 흙피리 공방까지 걸어가는 길에서부터 아이들은 홀딱 마음을 뺏겼다. 길 옆의 옥수수, 산딸기, 이름모를 꽃을 구경하고, 애기똥풀로 손등에 꽃 모양도 찍어보았다. 자귀나무꽃이 한창인 어느 집 담장 안을 기웃거리고 동네 소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흙피리 공방에 도착했다.
작업장에 들어서니 주인장이 여러가지 모양의 흙피리를 빚고 있었다. 미리 만들어 건조시킨 흙피리를 숟가락으로 문지르고 가마에 굽는 것이 그날 아이들의 몫이었다.
보통 흙으로 빚은 피리에 유약을 바르고 굽는데 유약을 바른 피리를 불면 입이 아프다. 대신 은숟가락, 동숟가락 등으로 문지르면 유약 바른 효과를 낸다. 그런데 이 작업이 만만치 않아서 어른들도 힘들어 하는데 아이들은 열심히 숟가락으로 문지르며 피리 색깔이 변하는데 감탄을 했다. 다 문지른 흙피리는 가마에 넣고 굽는데 땔감은 아이들이 뒷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였다.
문지른 숟가락의 재질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색깔을 띈 흙피리들이 가마에서 나올 때 아이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남은 불씨로는 미리 준비해간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먹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가마 속을 보면서 갑자기 엉뚱한 생각을 했다.
가마 속에 잘 다듬은 아이들을 던져놓고 전전긍긍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나중에 저마다 멋진 색깔을 가지고 가마에서 나오는 흙피리처럼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가마에서 금방 나온 흙피리는 너무 뜨거워서 손을 데기 쉽다. 피리가 식을 때 까지 기다릴 줄 아는 마음, 그런 기다림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뜨거워 미칠 것만 같은 아이들에게, 부모마저 함께 뜨거워서 안달한다면 어떤 해결점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이쁜 피리소리 나는 흙피리를 목에 걸고 방구피리 연신 불어대는 두 딸들을 보며 생각한 것은 '이들의 삶에 참견하는 부모가 아니라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친구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홍준희·인터넷학부모공동체 '마음에 드는 학교'대표
● 알아두면 좋은 정보
흙피리 공방 http://hrgpiri.co.kr/main.htm 오카리나 마을 http://www.ocarinama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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