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시위대에 둘러 싸여 치러진 제 75회 아카데미 영화제는 휘황찬란한 뮤지컬 영화 '시카고'(감독 롭 마샬)와 2차 대전 중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은 피아니스트의 실화를 다룬 '피아니스트'(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손을 들어주었다.24일(한국시간) LA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 75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 12개 부문(13명) 후보에 오른 뮤지컬 영화 '시카고'는 작품상, 여우 조연상(캐서린 제타 존스), 의상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뮤지컬이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1968년 '올리버' 이후 35년 만이다.
이라크 공격에 따른 보복 테러를 우려, 철통 같은 경비 속에 치러진 아카데미 영화제는 유쾌한 오락영화 '시카고'에 몰표를 몰아주는 한편 전쟁의 피폐함을 그린 '피아니스트'에도 상을 안겨줌으로써 "전쟁 와중에서 쇼를 한다"는 세계적 비난 여론을 비켜 갔다. 행사가 열린 코닥 극장 주변에는 반전 시위대가 몰려 들었고, 애드리언 브로디, 마이클 무어 등 주요 수상자들의 반전 메시지가 이어졌으며, 외국어 영화상 후보인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등은 시상식 참여를 거부했다.
1978년 소녀 강제 추행 사건으로 프랑스로 망명한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영화제의 최대 이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폴란드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먼의 실화를 다룬 '피아니스트'는 지난해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나 수상작이나 폴란스키 감독의 이력 때문에 수상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예상됐다. '쉰들러 리스트' 등 홀로코스트 영화에 관대한 아카데미 회원들은 또 다시 이런 영화의 손을 들어 줌으로써 '인류애를 중시하는 미국'의 이미지를 강하게 어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피아니스트'는 또 주연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가 남우주연상, 각색자인 로널드 하우드가 각색상을 수상해 3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코미디언 겸 배우 스티브 마틴의 사회로 치러진 이날 행사는 사회자가 인사말에서 "올해 레드 카펫 행사가 취소됐다. 이게 그들(이라크)에게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듯 시종 이라크전과 관련한 수상 소감이 줄을 이었고, 화려한 식 전후 행사를 생략한 채 간략하게 치러졌다.
'디 아워스'의 니컬 키드먼과 '시카고'의 르네 젤웨거가 치열한 경합을 벌인 여우주연상은 니컬 키드먼에게 돌아갔고, 남우 주연상은 '피아니스트'에서 헝가리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미국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가 차지했다.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은 음향상과 시각효과상등 기술상 2개 부문 수상에 그쳤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또다시 수상에 실패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 주요 부문 수상작
작품상 음향상 편집상 의상상 미술상 '시카고' 감독상 로만 폴란스키 ('피아니스트')
남우주연상 애드리언 브로디( '피아니스트') 여우주연상 니컬 키드먼 ('디 아워스')
남우조연상 크리스 쿠퍼 ('어댑테이션') 여우조연상 캐서린 제타 존스 ('시카고')
장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장편다큐멘타리영화상 '볼링 포 콜럼바인' 작곡상 분장상 '프리다' 외국어영화상 '노웨어 인 아프리카'(독일) 음향편집상, 시각효과상 '반지의 제왕' 주제가상 에미넴 '루즈 유어 셀프'('8마일') 각본상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녀에게') 평생공로상 피터 오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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